Episode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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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5


크리스토퍼러스 파이 해친슨 : DEX-M 유닛 966912 : 뇌신경 로그 14 : 124 : 56


 “안녕, 파이.”

 키티호크가 음성을 냈다.

 “안전부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나는 호환성을 맞춘 구식 수화기를 쥐어들어 전화를 받았다. 책임자가 친히 홀로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왜 내가 낀 뇌신경 인터페이스 안경 안에서 대담을 나누지 않고 굳이 전화를 하는가 궁금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답은 단순하다. 첫째로 나는 내 사무실에 구시대의 탐정 사무소의 구색을 맞추는 일을 좋아한다. (책임자는 이를 "괴짜풍" 으로 간주하고 있겠다만.)

 둘째로 호환성 보강 전화기는 해킹이 어렵다. 이 전화는 지난 세기의 골동품에 내 재량으로 홀로그램 전화를 받거나 끊는 옵션을 붙인 소장품이다.

 홀로스크린을 바라보며 얼룩진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다. 이보다 더 소박한 즐거움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뇌신경 단말 안경이 있는 이상 이런 몸짓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해도, 이 전화기는 내가 적어도 15%쯤 더 인간다워지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책임자의 사무실의 진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허나 나는 그곳의 구성요소가 밋밋한 콘크리트와 끝없이 열을 지은 지저분한 그라파이트 베개들뿐이리라 확신할 수 있다. 매일 머릿속에서 인테리어를 재상상하고 재디자인하는 일은 요즘 사람들의 당연한 일과다. 푸르른 목장과 알프스의 산봉우리를 보고 싶다면? “당신의 공간 재디자인하기” 뇌신경 앱으로 간단히 가능하다.

 유레카를 덮은 스모그와 어둠을 걷어내 눈부신 디지털 햇살의 환상으로 대체하고 싶다면?

 그런 앱도 물론 존재한다.

 불운하게도 지금 나는 그런 “필수 창조적 영양 주스” 를 즐길 수 없다. 나는 DEX니까. 나는 먼지를 걷어내고 저 깊은 기저의 증거물들을 향해 파묻혀야 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 현실을 무시하는 대신 견뎌내고 조사해야 하는 자다.


 안전 책임자의 과하게 디지털화된 아바타는 오늘따라 퍽 언짢아 보이는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수색 드론 17-94-15가 보고해온, 큐브 15에서 발생한 “시간 위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 위반은 대체로 골치아픈 사안이기에 나도 언제나 몸을 사리게 된다. 내가 처음 책임져야했던 업무 관련 불만사항은, 한 과학 연구팀이 자기들 전부를 미래에 흩어 보냈던 사건이었다. 정말, 어떤 양반이 미래로만 이동할 수 있는 시간도약시계 따위를 발명한 거지? 물론 미래의 자신을 위해 내일 아침식사로 먹을 팬케이크를 전송하는 일 정도에는 유용하겠다만, 사고로 자기 자신을 백만 년 뒤의 미래로 보내 버린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터다. 그리고 나는 개중에는 사고가 아닌 경우도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미래로 도약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는 드라마와 공기오염으로 가득하고, 보정되지 않아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육신에는 둘 중 어느 것이든 바람직한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허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자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미래의 공기가 고체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근 스모그가 얼마나 진해졌는지를 고려해 보면 말이다.

 더불어, ANNET의 행성 앵커가 영원히 온라인 상태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이상 무턱대고 미래로 도약하는 일은 우행에 불과하다. 언젠가 ANNET이 업그레이드되거나 앵커가 고장난다면? 그자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은하가 자리를 옮겨 버린 낯선 우주 어딘가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시간 루프는 심각한 사안이다. 내 우수한 역량에 걸맞을 만큼.

 예를 들어 “311번 사건”이 있다. 1%로 칭해지는 접속불가자 테러리스트 집단이 가정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폭탄을 만들었다. 솔방울과 시간도약시계로 제작한 폭탄. 그 결과 G-큐브 34구역 전체의 시간은 루프에 빠져,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일종의 부재(不在) 상태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그 내부에서 잘라낸 15초의 시간을 들여다보았었다. 시간이 앞뒤로 날뛰고 셔플댄스와 문워크를 추는 광경을 본 나는 나노 밀봉 테이프로 구역 전체를 봉쇄한 뒤 공고문을 붙여 두었다. “위험! 우주가 접히기 전까지 진입하지 말 것, 시간 루프 진행 중!”


 그래서, 큐브 15라.

 나는 보고서를 머리에 다운로드받아 “커피” 홍수의 영상을 재확인했다.

 사상 최고로 멍청한 테러 계획이 눈 앞에 펼쳐졌다. 스캔불가자는 갈팡질팡하는 시늉을 했다. 큐브 15를 수 분만에 지옥도로 만든 이 모든 상황과 자기 자신이 아무 관련도 없다는 양.

 그러나 파이프가 스스로 저렇게 폭발할 리가 없다. 초강력 위성 무기 앱이 저 혼자 발동되었을 리도 없다.

 이온 빔이 전자기기를 고장내며 영상도 끊겼다.

 스캔불가자의 DNA가 타키온과 함께 굴러다니는 가운데, 그들은 폐허 가운데 살아남은 스캔불가자를 발견했다.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도주뿐이겠지. 글쎄, 물론 Dex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겠다만.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도록 설계되었거든.


 내 적의 얼굴 파일이 스크린에 로드되었다.  76’99%의 확률로 당신이 바로 그 자겠군. 과학부의 둔치들이 당신을 그 슬픈 운명에서 구출해 주기에는 부족하지만, 안전부에게는 충분한 수치다.


 무시무시한 스캔불가자는 머지않아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접속불가자들의 리더. 당신을 사냥해서 내 사무실에 걸린 구식 블라인드처럼 접어 주지.


 당신이 ANNET을 해킹하고, 위성을 하이재킹하고, 시계를 되감던 나날들은 이제 끝났어. 창백한 고깃덩이 친구.



Credits


모델 / 이번 화에 보탬을 주신 분 : Tara Wells

(맛깔나는 도움 감사드립니다!)


아트 디렉터: http://alexiuss.deviantart.com 


일러스트: http://iidanmrak.deviant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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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3.09.27 13: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파일럿 간지가 흘러넘치네요

  2. ㅇㅇㅇ 2013.09.27 17: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파일럿은 그럼 사이보그인건가요? 저 손 보니까...ㄷㄷㄷ
    이전에 스니피가 파일럿을 "애같은 로봇"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결국 그 말이 맞았네요...그럼 캡틴을 "보라색 눈 소녀"라고 말했던데 캡틴도 거의 여자 확정이겠네요.

  3. fjsdo 2013.09.27 22: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미래도약을 하네 어쩌네 하는데 무슨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안되네요;

  4. sabaha 2013.09.29 14: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스니피...?

  5. 1234 2013.10.14 2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니까 스니피가 바이오스피어스안에서 죽어있으면서 겪은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요? 시간여행을해서?ㄷㄷ

    • ㅇㅇㅇ 2013.10.21 18:02 신고 address edit & del

      이전에 겪은 일들을 데자뷰처럼 다시 회상한게 아닐까요?

    • 2013.10.21 21:10 신고 address edit & del

      물건너쪽의 추측으로는 스캔불가자이면서 시공간을 비트는 속성을 가진 스니피가 겪은 사건 때문에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왜곡된 것이라는 설이 나오던데요... 그러니까 과거에 있었던 커피홍수&이유없는 폭격의 이유는 스니피가 현재에서 바이오매트릭스에 매여 과거를 회상하던 도중에 애니가 이온캐논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것이 과거에도 있던 일이 되어 버렸고 과거가 바뀌었다는 거죠.... 복잡하네요

  6. 김일성 2013.11.07 12: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솔방울과 시간도약시계로 만든 폭탄은 설마 북한에서 '수령동지께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셨다!'라고 선전하는 거의 패러디인가...

  7. 지저아닌가요? 2015.02.14 15: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기저가 아니라

    • 기저 2015.08.14 22:46 신고 address edit & del

      1. 어떤 것의 바닥이 되는 부분.
      2. [같은 말] 근저3(根底)(사물의 뿌리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증거물 찾으려고 땅 파헤칠 게 아닌 바에야 기저가 더 정확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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