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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5f, 6







Issue 5f

ENTRY 166__09 - 인간 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스니피 군! 아주 촉촉하고 멋진 뉴스가 있네!”

 캡틴은 돌격하듯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그 등쌀에 경첩이 그대로 벽에서 떨어져나왔다. 엎어진 문이 피워올린 먼지가 가라앉고 난 뒤, 나는 캡틴이 금색 오스카상 비슷한 것을 플라스틱 사슬에 달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에 주목했다. 캡틴이 주변을 서성일 때마다 오스카상은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덜렁거렸다.


 “캡타닉의 레드 카펫 프리뷰 행사에 초대됐네! 자네의 사환 역은 만족스럽긴해도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었네만... 그래도 내가 뇌물로 심사위원들에게 잼 50통을 먹인 게 먹힌 모양일세! 명단에 들었어!”


“에? 뭐라고요?” 내가 말을 내뱉는 참에 캡틴은 나를 거처에서 끌어내서는 길 건너의 극장으로 끌고 갔다. 

나는 극장의 반원형 벽에 붙은 낡아빠진 타이타닉 포스터를 발견했다. 원래 있던 배우의 얼굴을 허옇게 덧칠하고는 그 위에 크레용이나 마커 등속으로 캡틴과 파일럿, 내 머리를 낙서해 놓았다. 


그리고 포스터 아래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캡타닉 : 열정의 역동적 만화경 : 출연 :  파일럿 - 그 이발 좀 해야 하는 늠름한 양반 : 캡틴 - 줄리아 로버츠 : : 스니피 - 불쌍한 사환 :"


극장 입구 위에 나붙은 제목은 이랬다. “캡타닉 - 6D - 11:75 13:94 27:11” 게시된 상영시간 중에 가능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아주 약간 귀여움을 느낀 나는 캡틴에게 시간에 대해 한 마디 했다. 캡틴은 내 말을 고사하며 대꾸했다. “그리니치 시간은 구식인데다 비효율적이야. 우리는 지금 캡타니아 시간을 살고 있네, 이 멍텅구리.”


 극장 안에서 100진수짜리 시계를 발견했다. 분명 캡틴이 그 ‘캡타니아 시간’ 에 맞추느라 오래된 시계를 고친 것이겠지. 시계에 달린 여섯 개의 시계침은 서로 따로 노는 듯한 주기로 돌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중 두 시계침은 꿋꿋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다. 이런 짓을 하려면 제법 본격적인 시계장치 기술이 필요할 텐데?


캡틴은 티켓 창구로 유유자적하게 다가가 “열한-열일곱-다섯 시 공연의 골든 VIP 티켓 세 장” 을 청했다.

뼈만 남은 직원은 물론 말싸움 같은 것을 할 수 없었지만 캡틴은 직원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상상한 모양이었다. 턱뼈가 날아가 버린 점원 앞에서 캡틴이 말했다. “젊은 것들이란! 요즘은 VIP에 대한 예의가 없군그래!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게지!”


 나는 캡틴이 헛짓과 함께 “책임자 불러와” 운운 쩌렁쩌렁 외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식 웃었다. "어련하겠어요."

 아주 잠시 동안 캡틴은 인내심있게 팔짱을 낀 채 묵직한 군화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12초도 채 되기 전 와락 현실로 돌아오더니 안전선을 밀치고 안내 데스크로 돌진했다. 데스크와 직원 해골은 폭발하듯 부서져 먼지구름과 뼛조각과 낡은 나뭇조각 더미가 되었다. 그 먼지구름 사이에서 캡틴은 의기양양한 몸짓으로 금색 호일 3장을 꺼내 그 중 하나를 내게 쥐어주었다.


 티켓에는 “캡타닉 - 17과 2분의 1관 - 11:75”라고 쓰여 있다.


 “흐음.” 캡틴이 쇼맨십의 미학에 이렇게나 열심인 모습이 적잖이 감탄스러웠다.


 캡틴이 주절거렸다. “자, 절대 골든 패스를 잃어버리지 말게! 그랬다간 극장 문 밖에서 발만 동동거려야 할 테니까! 파인애플 테러리스트 덕분에 요즘 보안요원들은 철두철미하단 말일세.”

 

 금박지 티켓을 주머니 안에 쑤셔넣으며 나는 극장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캡틴을 뒤쫓았다.

 다행히도 돌연변이 생물 같은 것은 없었다. 널찍하게 부서져 뚫린 천공광과 더불어, 천장이 반 넘게 내려앉아 바닥의 돌무더기가 된 덕에 내부는 그럭저럭 밝았다.


 “스낵” 코너로 다가가자 오래 묵은 시커먼 버섯들이 발길에 밟혀 부스러졌다.

 이 시점에서 캡틴은 “맛난 음료를 얻어내게” 라고 내게 청하고는, “100 캡타니아 크레딧” 이라고 쓰인 약간 그을린 보라색 종이쪽을 쥐어 준 뒤 겅중거리며 사라졌다. 나는 캡틴이 만든 위조지폐의 썩 괜찮은 품질에 잠시 경의를 보냈다. 엉망진창으로 휘갈긴 캡틴의 머리가 한중간에 그려져 있었고 모자에서부터 빛이 뿜어져나왔다. 그 밑에는 “IN CAPTAIN WE TRUST”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 100 캡-크레딧을 해골 점원의 서랍에 집어넣어 준 뒤 잠시 고민했다. 거스름돈을 챙겨가야 하나? 그러면 캡틴은 나한테 숫자 54도 셀 줄 모르냐며 몇 시간을 설교하고는 “산수와 적당한 팁 주기는 진정한 신사의 의무라네!” 운운하지 않을까? 이 시체한테 팁을 주지 않으면 캡틴이 날 해코지하려나? 그렇다고 팁을 주면 거스름돈을 왜 안 가져왔냐며 뺨을 날릴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거스름돈 용도로 여기서 옛날 동전을 몇 개 주워 간다면 캡틴이 “요즘은 환율이 참 예전같지 않지” 어쩌고 칭찬을 해대서 귀찮아지려나?


 나는 상상을 포기하고 낡아 녹이 슨 음료수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처음에는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냉장고는 이내 부서지듯 열리며 금속제 소다 깡통을 내 머리 위에 투하했다. 라벨을 확인해 보니 소다는 20년도 더 전에 유통기한이 지났다. 뭐 그래. 우리가 사는 시대가 뭐 이렇지. 생산은 더이상 없고 소비만이 있는 시대. 팝콘 카트에는 시커멓고 가시가 돋은데다 배배 꼬여 그물을 이룬 뿌리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역겨워하며 그 모습을 쳐다본 나는 카트가 얼마나 피폭되었을지 짐작해 보았다. 저기서 저 시커먼 팝콘 조각을 퍼내 뒀다가 (혹 캡틴이 팝콘이 먹고 싶다고 우기는 때가 오면) 캡틴의 머리에 집어던져 줄까. 짜증스럽게도 주변에서 빨대는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주변에 빨대 먹는 괴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Credits

아트워크는 멋진   http://iidanmrak.deviantart.com 님께서.



역주. IN CAPTAIN WE TRUST : 미국 달러 지폐에 쓰여 있는 'In God We Trust'의 인용.











Issue 6

ENTRY 166__10 - 인간 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스낵과 음료” 임무를 완수한 나는 17과 2분의 1관으로 가 캡틴과 합류했다.


 캡틴에게 물어보았다. “파일럿은 같이 안 옵니까?”


 "그렇다네. 파일럿은 거시기만큼이나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거든! 나와 파일럿은 27시 11분의 심야 쇼에 참석해야 하는데, 그 시간은 자네 취침시간 한참 뒤잖나. 하지만 나야 촉촉한 신민들을 위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지."  캡틴이 단언했다.


 나는 수긍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 시간이면 아마 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한참 넘기긴 할 테고 (캡틴과 다르게 나는 밤에 9시간을 채워서 자니까) , 파일럿의 어린애 짓거리에 오늘만은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행복하기도 했다.


“보라!” 캡틴은 극적으로 외치더니 어두운 스크린 쪽으로 팔을 펄럭였다. “22세기 최고의 퍼포먼스를!” 의자에 몸을 붙이며 나는 거의 들뜨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캡틴이 아직 굴러가는 영사기를 켜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지만 역시나, 스크린은 시커먼 그대로였다. 나는 캡틴에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항의해 보았다. 혹 잠깐 착오가 생긴 건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 항의는 간단히 묵살되었다. “뭐라고 했나? 함성과 수-박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질 않는데!


...영사기가 망가졌다니? 오, 가엾고 허름한 스니피! 자네 어떻게 집에서 6D 안경을 챙겨오는 것도 잊어버릴 수가 있나! 요즘 영화는 6차원인 것도 몰랐나? 불쌍하기는!


 문제없네! 스크린에서 무엇이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친히 해설해 주지!"


그리고 캡틴은 변사 모드로 돌입해서는 영화 앞에 틀어 주는 광고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 분 후에는 “거칠고도 흥미진진한, 놀라 자빠질 만한, 마음을 사로잡는 캡타닉의 이야기 - 과거의 세계에 있었던 가장 진실한 로맨스” 에 대해서.






역주 1. "거시기만큼이나 중요한" = OF GRAVY IMPOTENCE (=of great importance).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입니다.

역주 2. 수-박 = APPLE-SAUCES (=applauds). 역시 발음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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