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75

|








Issue 175



ENTRY 369__113 - 인간 실험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시공과 비동기화되는 일은 피크닉은 아니었다.


“점점 익숙ㅎㅐ질 ㄱㅓ다.” 스카프가 말했다.


머릿속으로 대꾸했다. “죽은 상태인 게 익숙해질 리가 있겠냐고!”


“쯧쯧. 매사ㅇㅔ 밝은 면을 보도록!”


실컷 보고 있다. 주변의 세계는 온통 휘어지고 꼬여 마치 무한한 무지갯빛 프레첼 같았다.

정신사나운 광경이다.

나는 눈을 감고 눈꺼풀 안쪽의 풍경을 보았다.

나의 흔적이 푸른 선이 되어 등 뒤의 과거로, 눈밭 위의 발자국처럼 그어져 있다. 내가 남긴... 시간에 남긴 발자국이다.

가능성의 주황색 선들이 내 앞쪽으로, 내게 가능한 미래들로 뻗어나간다.

선으로 구성된 매듭들로 짜인 이 그물은 나 자체였다. 돌고 도는, 뒤얽힌, 방대한 그물.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복잡성 가운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ㅅㅣ간은 모ㅈㅏ란데 할 일은 많군!” 바이오매트릭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시간 속의 매듭들을 가리켰다. “시간도 선택도 무한한 거 아냐?”


“오, 찰스. ㅇㅣ것 참 설레는 일 아닌가? 시간 한가운데로, 함ㄲㅔ 뛰어들어서, 잘못된 일을 수정하고, 모두ㅇㅔ게 공짜 파이를 나눠주는 ㄱㅓ지! 모든 사람의 창ㄱㅏ에 따뜻한 파ㅇㅣ를 선사할 ㄸㅐ까지 멈추ㅈㅣ 않고 말ㅇㅣ야!”


“잘못된 일을 수정한다고? 넌 그냥 모두의 내장을 꿰차는 데 날 이용하고 싶은 것뿐이겠지.”


“인정ㅎㅏ지. 무한한 ㅍㅏ이의 대가는 ㅈㅣ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ㅊㅔ들의 복속ㅇㅣ다.

대ㄱㅏ를 지불할 준ㅂㅣ는 되었나?”


나는 세계멸망과 사고(思考)할 자유의 무게를 저울질해 보았다.

내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내 그물의 푸른 선을 일만 년 전의 과거까지 되짚어올라 첫 번째 매듭에 다다랐다.


“좋아ㅏ.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방을 날리면 ㅇㅓ떤 일이 일어날까? 집단 ㅈㅣ성의 태동ㄱㅣ에 모든 생명체를 테트라바이러스ㅇㅔ 감염시킨ㄷㅏ면?”


첫 번째 매듭이 진동하며 지금까지 없던 삶을 펼쳐놓았다. 나는 내 조상의 머릿속, 그의 DNA 정보의 내부에 있었다.

이번에는 그저 지켜보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시공에서 비동기화된 나는 완전한 지배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얼음 속의 머그잔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대체 머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음.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마음 속에 하나의 목적을 - 인류의 자유의지를 빼앗겠다는 목적을 품은 채 빙하 동굴을 나섰다. 내가 누군가와 악수를 하면, 그들도 다른 누군가와 악수를 하겠지.


바이오매트릭스는 모든 이에게 퍼지고 모든 이들을 감염시켜 사고를 변화시킬 것이다. 모든 불일치를, 모든 오해를, 고통을, 죽음을 뿌리부터 없애 버릴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서로에게 공감하는 아름다운 하나의 군체가 될 것이다.


그럼 갈등도, 전쟁도, 기술 발전도, ANNET도, 생명체의 멸절도 없겠지.

옷가지도 없을 테니 행성 전체가 누드비치 휴양지가 될 테고, 우주 의회의 주의를 끌게 될 것이다.


연합의 관광 우주선이 낙원을 기대하며 도착하지만…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죽어버린 세계다. 스캐너 빔은 홀로 남은 불사의 생존자 - 찰스 스니피를 찾아낸다. 그는 미쳐버린 지 오래고 그가 기록한 한 마디는 “검은 파도가 별을 덮어 모든 생명을 먹어치워 버렸다” 뿐이다. 


...


“결고ㅏ 부정적! 누군ㄱㅏ가 선형성을 유ㅈㅣ시키고 있ㅇㅓ! ㅅㅣ공 매듭 리셋 중!”


...


나는 얼어붙은 빙하 동굴로 되돌아왔다. 흘러내린 눈물이 뺨 위에서 얼어붙었다.

그 아름답던 휴양지가 사라져 버렸어.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잘못된 거야?

분명 옷가지도 다른 모든 것도 전부 금지했는데 왜! 일만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아갔는데, 결국 내 완전무결한 세계가 비정상적인 재앙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맞닥뜨리는 게 결말이라니!

나는 얼음에 비친 원시인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얼음 속에서 머그잔이 반짝였다.

머그는 나를 비웃고 내 실패를 조롱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머그. 이건 다 네 탓이야!

분노에 가득 차 나는 창을 들어올려 얼음을 내리찍었다. 얼음에 금이 생겼다. 시커먼 액체가 그 균열에서 뿜어져나오더니, 내 창을 먹어치우고 넘쳐올라 과거의 나를 통제하던 내 주도권을 녹여버렸다.


선이 흐려졌다.

“이건 또 뭐야!?” 숨이 가쁘다. 허파가 불타는 것만 같다.


“흐으으음… 우리ㄱㅏ 한 수정ㅇㅣ 없던 일이 됐군. ㅇㅏ무래도 과거으ㅣ 모두에게 맛깔ㄴㅏ는 파이를 ㄴㅏ눠줄 수는 없는 모양ㅇㅣ다.”


나는 신음하며 쿨럭거려 검은 액체를 토해냈다. 가슴에 꽂힌 칼이 따끔거렸다.

가슴에 꽂힌 칼이라니. 나는 놀라 칼을 내려다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언제?


일만 년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불가항력으로 소용돌이쳤다.

가능성의 선들이 통제할 수 없이 빙빙 돌아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는 이 현재의 매듭과 이어진 연속성에 주의를 집중하려 애썼다.

가능성의 선들이 흐려졌다. 또 다른 삶의 기억이 천천히 빠져나가 꿈처럼 스러졌다. 기억은 바이오매트릭스가 “실낙원”이라 이름붙인 어카이브에 구겨넣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금속 큐브가 가득하다.

나는 놀라 내뱉었다. “큐우우브...”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말게!” 목소리 자체로도 어조로도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친근한 고함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그 찌푸린 표정을 내가 싹 바꿔 주도록 하지!

이리 오게, 자네를 위한 전차가 대기하고 있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았다. 아, 그래요. 당신이 지 캡틴인 건 알아요.

그리고 저쪽에 있는 건 파일럿. 저건 내 전차일 테고. 멋지기도 하지.


파일럿과 캡틴이 전차에 나를 태우고 죽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뒤늦게 내 전차가 사실 유모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시공의 나는 너무 빨리 자란 칼 꽂힌 아기 비슷한 건가? …아닌 것 같은데.

파일럿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산”과 지팡이”라 불리는 물건도 지니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 시공의 내 가족이 분명해. 나는 유모차 옥좌에 앉아 결론을 내렸다.

가족들이 “부츠”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내올 때쯤에야 서서히 판단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시간 뒤에는 “슈퍼센터”에 가서 “포장의 날 선물”을 얻었다.

쇼핑몰의 잔해에서 파일럿은 캡틴과 나의 초상화를 그렸다.

초상화를 들여다본 나는 드디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해냈다.


쇼핑으로 흥청망청 노는 일도, 친구들과 험한 소리를 주거니받거니하는 일도 즐겁지만, 엔지 박사를 찾아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렉산더 그로모프 박사를.


그로모프를 찾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소용돌이를 그리는 큐브들의 가능성과 매듭을 들여다보자 간단했다.

그로모프는 그의 피조물인 ANNET과 도시의 광장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ANNET은 빛나는 체인이 달린 바지를 입고 있다.

나는 이를 갈았다. 이번에는 인간이 아니라 저 여자가 끝장날 차례다.

내가 도착했을 때 둘은 이메일 운운하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개밥의 도토ㄹㅣ 꼴로 있ㅈㅣ 말고 끼ㅇㅓ들어!

칼을 쓰도록 ㅎㅐ, 찰스. 뭘 해야 하는ㅈㅣ는 잘 알겠ㅈㅣ!” 바이오매트릭스의 겹쳐진 목소리들이 머릿속에 속삭였다.


그렇게 했다. 그로모프 박사를 붙잡고 그를 칼로 협박하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먼 미래의 가능성을 슬쩍 들여다본 덕분에 나는 허공에서 스쿨버스를 떨어뜨리는 관리자 명령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고 관리자로서 그로모프 박사가 ANNET을 통제하는 명령어를 쓸 수 있다는 사실도. 그는 ANNIE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나는 평범한 컴퓨터에게 그러하듯 ANNIE를 끄라고 박사에게 말했다.


그는 칼날에 질린 채 내 명령에 따랐고… 이윽고 “예” 라고 말했다. 그리고 뇌신경 네트워크 서버의 종료 시퀀스가 가동되었다.

우리 주변의 세계가 픽셀 먼지로 분해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내가 또 다른 끔찍한 멸망을 불러오는 실수를 벌인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로모프는 무어라는지 모를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늘어졌다. 큐브 드론들이 허공에서 부서져 검은 유성군처럼 지상으로 쇄도했다.

온 도시가 거대한 지진 가운데 흔들렸다. 조각나는 건물들이 좌우로 떨어져 지면 아래로 꺼져내렸다. 거리는 금이 가고 폭발해 거대한 균열을 남겼다. 나는 그로모프의 목깃을 그러잡으며 도약했다.

박사의 몸은 국숫가락처럼 낭창거렸다. 본인의 끔찍한 피조물을 죽인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내가 속도를 붙이며 서두르자 그 부작용인지 무엇인지 시간이 알맞게 느려졌다.

벽돌과 먼지와 돌조각이 주변의 공기를 수놓았다. 나는 무너지는 고층건물의 벽면을 디디며 내달렸다. 날뛰는 뇌전이 우리를 바싹 뒤쫓아왔다.


의심이 들었다. “제칠 수 있을까?”


“ㅇㅏ니.” 스카프가 답해왔다.


폭발적인 속도로 접혀들어간 도시가 반듯한 육면체 모양의 크레이터가 되었다.



Credits

이번 달 RA의 최고의 후원자:

Candied Sardines

Junsu Park

D. Parent


아트 디렉터:

Vitaly S Alexius


일러스트레이터:

Iidanmrak





신고

'Archiv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isode 177  (9) 2014.07.21
Episode 176  (9) 2014.05.21
Episode 175  (3) 2014.05.03
Episode 174  (2) 2014.05.03
Episode 173  (13) 2014.03.26
Episode 172  (3) 2014.03.26
trackback 0 And Comment 3
  1. 범접할 수 없는 클래스 2014.05.03 10: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분은 정말..시공을 넘나드는 전개를 펼치고 있군요!
    평범한(?) 인간 스니피가 신 되는 썰 풉니다

  2. 드디어!!! 2014.05.09 00: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얼마만의 업로드인가!!

  3. Petaine 2015.09.05 18: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Issue 170으로 가서 다시 읽고 옵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