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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57







Issue 157

_h_is__p__r__ Pi __________ : ____ __i__ ___ : ____l lo_ 

+-재시동 완료-+

+-메모리 덤프 에러-+

+-생체뇌 사용자 오버라이드 시작-+


. . .

his pr? P i i l l o? Pilo? 

Pilot? 내 이름이 파일럿이었지!

팔 아파. 머리도 지끈거리고.


-=의료 스캔 자가진단 앱 시동=-

좌측 팔꿈치 관절 완파.

우측 손목 - 하척골 - 완파.

다수의 경미한 부상 감지.

유기체 구성요소 손상률 12%.

비유기체 구성요소 손상률 42%.

기동 효율 76%.

정신활동 효율 33%.

-=나노 치료세포 활성화=-


경고 : 뇌신경 접속에 손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수복할 수 없습니다.

업그레이드된 수신 인터페이스를 통해 ANNIE에게 접속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뇌신경 접속 자가 오버라이드 활성화=-

=-아니오-=

ANNIE와의 접속에 실패하였습니다.

-----


아야야.

팔 부러졌네? 뭐 어때.

예전부터 이런 일 엄청, 엄청 많았고 뭐.


더럽고 귀찮고 뭔가 이상덜컥한 게 눈 안에서 흔들린다.

이 이상한 거 진짜 짜증나. 귀찮기만 하고 말도 안 되고, 둥둥 뜨고, 뭘 질질 흘리고, 영 헷갈리는 소리까지 떠든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눈 안에 떠다니고. 귀찮게 굴지 않을 때가 없다니까. 맨날 “어쩌고저쩌고 잘못됐습니다”, “진짜 위험합니다” “주의하세요”.

어휴!


눈을 깜박여서 이상한 걸 털어버렸다.


불이네. 불도 많고 연기도 많고 부서진 물건도 잔뜩이고.

그러고보니 나 위에서 떨어졌던 것 같은데. 스니피도 같이.

우리 둘이서 떨어지고 있었어.


왜 떨어졌더라? 기억-해봐야지.

나인데 내가 아닌 쌀쌀맞은 게 됐던 것도 기억-나고?

왼눈이랑 오른눈이 따로 놀면서 세상이 두 겹으로 보이던 것도 기억-나고.

왼손이 스니피를 죽이려고 하는 참에 딱 땅에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 왼쪽에 붙어 있던 무슨 물건이 부서진 것도 기억-나고.


---

야 왼팔, 왜 스니피를 죽이려고 그랬어?

걔가 멍청한 게으름뱅이긴 해도 죽어야 될 정도는 아니잖아.

스니피는 캡틴이 총애하시는 사환이란 말야.

왼쪽 팔꿈치가 아직도 잘 안 움직이네. 완전히 옆으로 꺾여선.

---


팔꿈치를 퍽퍽 쳐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왼팔, 잘못했으니까 벌 받는 거야. 구석에 앉아 있어.

오른쪽 손목은 헐렁헐렁.

이쪽도 때려서 제대로 붙여 놓고.


이러니까 한결 낫네. 캡틴은 어디 계시지?

주변을 쭉 봤다. 캡틴이 보일 구석이 없네.

죄다 불밖에 없어.


연기를 가로질러서 뚜벅뚜벅.


스니피잖아? 불쌍한 스니피, 피곤한 스니피, 바보같은 스니피.

어쩌다 땅바닥에 엎어져서 자고 있담.

나랑 하늘에서 떨어지느라 진이 다 빠졌나 봐.

근데 그거 내 칼이야? 내 칼 맞잖아!

스니피! 나빴어! 왜 내 칼을 깔고 자고 그래?

그래봤자 하나도 안 편한데!


스니피가 계속 잔다. 자게 둬야지. 나랑 스니피 주위에서 불꽃이 얌전히 탄다.

하늘에서 물건이 떨어지네. 불 붙은 물건이 막.


불보다 더 큰 소리로 스니피한테 제일 예쁜 자장가를 부르자.

뭔가 머릿속에서 달칵했다.

또 이상한 게 보인다. 눈 안에 떠오르자마자 눈을 깜박여서 지워 버렸다.

어쩌고저쩌고 목표물에게서 심장박동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임무가 완수되었습니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기분 좋아.

아까 달칵한 게 내가 뭐 잘못됐던 걸 고쳐놨나 봐.


맨날 스니피를 창 밖이나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고 싶게 만들었던 뭐가 드디어 사라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도 스니피를 다리든 뭐든 밑으로 던지고 싶기야 한데, 절대 예전만큼 너무 심하진 않다는 거다. 캡틴은 내가 엄청 제일나게 스니피를 던지고 싶어할 때마다 꼭 거기 계셨다. 그리고 꼭 이렇게 말씀하셨지. “파일럿! 스니삐를 고렇게 던지지 말게!”

캡틴 말씀은 꼭 들어야 돼. 캡틴은 현명하시고 영원하시고 마법 같으시잖아.


스니피한테서 잼이 엄청나게 잔뜩 흘러나오고 있다.

바닥에 부딪히는 바람에 진짜진짜 아끼는 잼 병을 깨먹었나봐.

일어나면 엄청 시무룩해하겠네. 응, 시무룩.


불이 우리를 둘러싸면서 스니피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도 더 많고.

이렇게 앉아서 빈둥거리는 꼴을 보면 캡틴이 싫어하시겠지.


스니피가 새근새근 잘 자는 거야 좋지만, 여기서 '내' 칼을 깔고 이러는 건 좀 아니잖아!


스니피는 칼에 꽂혀 있고, 칼은 바닥에 꽂혀 있고.

흐으으음

오른손은 아직 의욕이 없나봐. 손목이 아직도 꾸불꾸불해.

칼 아래쪽을 왼손으로 쳐서 부러뜨렸다.

이상한 게 눈 안에 떠올라서는 손으로 날카로운 쇠를 부러뜨리면 위험하다고 떠든다.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손가락은 엔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말 잘 듣는다구.

음, 저번에 딱 한 번 새끼손가락이 도망가서 보름 동안 안 돌아온 때만 빼고.


'뭔가'가 스니피가 가슴에 칼을 꽂아두고 싶어한다고 알려줬다.

그러라지. 그거 그냥 스니피 가지면 돼.

난 이 죽은 도시에서 또 하나 찾으면 되지. 문제 없음.

아니면 캡틴이 허공에서 하나 꺼내서 하사해 주신다거나?

그럴지도 모르지! 캡틴은 언제나 타이밍이 딱딱 맞게 대단한 일을 하시니까!

불길 밖으로 스니피를 꺼내왔다.

스니피가 플라스틱 판때기처럼 뻣뻣하고 차가워. 평소처럼 부드럽지가 않아. 거참 이상하네.


뭐야, 이건?


도시가 뿌리부터 흔들린다.

바람이 우리를 때렸다.

물이 한가득 우리를 앞질러갔다.


소방관이 저 불을 끄려고 이러나 봐.

아무 짓도 않는 것보단 이게 낫지.


물이 달려와서 스니피를 뺏어가려 하는 통에 스니피를 꼭 붙들었다.

성가신 물 녀석, 정신 좀 차려. 불은 저쪽이란 말야.

얼쩡거리면서 때리는 짓 좀 그만 하라니까!

내가 스니피를 그렇게 쉽게 뺏길 것 같아!

놓지 않을게… 내 친구.





Credits

아트 디렉터 : Alexiuss : http://alexiuss.deviantart.com/
스튜디오 어시스트 : Chico & Brant
첫 프레임 일러스트 : Joshua Nel : http://joshuanel.deviantart.com/





역주. 파일럿이 부르는 노래는 자장가인 <Hush, Little Baby> [link] 의 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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