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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6






Issue 186

대체...


애니의 이름에 걸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나는 허공에 뜬 채 은은히 빛나는 에러 메시지 주변을 빙빙 돌았다.

위안도 답도 찾아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에러! 날 이렇게 놀려먹겠다 그거지?” 

초조해진 나는 위편을 향해 소리쳤다.

“이 MUG.EXE는 또 뭐야?”


둥둥 뜬 문자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황량한 푸른빛 사막을 돌아보았다. 끝이 없는 듯한 푸른빛은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글자들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조금 나아가 보았지만 금방 사위가 어두워지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새파랗고 텅 빈 풍경이 나를 압도했다. 무한히 펼쳐진 이 공간에는 지평선 비슷한 것조차 없는 듯했다.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먼 지점까지 걸어가 본 나는 이내 글자 앞으로 되돌아왔다. 공포가 신경을 유린했다.

대체로 사람의 오른발은 왼발보다 우세하다. 기준점이 될 대상도 없이 앞으로 나갔다가는 안개 속에 있는 사람이 그렇듯이 빙빙 맴돌이를 하게 될 것이 뻔했다.


나아가다가 길을 잃을까 무서웠다. 글자가 뿜어내는 빛 아래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어떤 시뮬레이션에 갇혔거나 어딘가로 강제로 전송된 것인가? 알 수 없다.

더불어... 이 공간의 중력은 총체적으로 이상했다. 내가 있던 공간의 팔할 정도일까. 덕분에 나는 의도치 않게 겅중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얼굴부터 푸른 모래 위에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수분섭취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그냥 시뮬레이션이라면 내 진짜 몸은 어디에 있지?

시간이 지날수록 공황이 점점 나를 사로잡았다.

참을성을 잃자 떠 있는 글자들을 향한 격분이 끓어올랐다.

빌어먹을 공중부양 글자 같으니!


“잡히기만 해 봐라!” 악을 쓰며 나는 숫자 0을 붙들려 점프했다.

낮은 중력 덕에 시도는 성공했고 나는 0의 아래쪽 선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높이보다 훨씬 높았다. 고소공포증이 엄습했다. 나는 재차 숫자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가 빛나는 작은 육면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어떤 이유로 내 몸무게를 버티지 못한 육면체들의 연결이 끊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여자애처럼 비명을 지르며, 0의 아래쪽 획을 끌어안은 채, 반쯤 슬로우모션에 가까운 속도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내가 손을 댄 탓에 떠 있는 메시지 전체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내 등이 모래에 처박히는 순간 에러 메시지는 내 위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벙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은은히 빛나는 사각형들이 천천히 내게 쇄도해왔다.


숫자와 글자들이 스르르 떨어져내려 내 주변의 온 사방에 산산조각났다. 먼지구름이 말려올라 시야를 덮었다.



Credits

Hugs and love to all our DELICIOUS PATRONS

Art Director:

Vitaly S Alexius

Illustrator:

Andrey Feti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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