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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3, 34, 35, 36







Issue 33

즐겁고 평범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이 에피소드는 2010년 12월 23일 연재되었습니다.) 


















Issue 34

ENTRY 180__15 - 인간 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아무래도 내가 드디어 미쳐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상황이 거의 즐거울 지경이었으니까. 인간이야! 나랑 똑같은 제정신인 인간이라고! 이 사람들 어쩌면 수돗물을 쓰고 있을지도 몰라. 세상에, 진짜 샤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내 주변을 둘러싸서는 숙련된 동작으로 내 머리에 무기를 겨누었다. 이렇게 고된 날이라니. 돌연변이 괴물한테 쫓기고, 기계 유령한테 추적당하고, 이제 심지어 나를 겨눈 총부리들 앞에서 남자답게 견뎌야 한다 그거지.


무리 중 한 명이 내 팔을 꺾어 등에 붙이고 양손을 묶었다. “이봐요, 살살 좀 해요! 인간은 멸종위기종이라고요!” 동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에 외쳤지만, 그들은 그저 나를 의자에 단단히 결박할 뿐이었다.


불이 켜진 전구 바로 아래에 놓인 의자에 말이다! 전구라니! 고개를 쳐든 나는 더할 나위가 없는 행복을 느끼며 전구를 우러러보았다. 전구는 희미하게 깜박이고 웅웅거렸다. 분명히 수돗물도 돌아갈 거야! 기쁜 나머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해병대원 중 한 명이 캡틴이 나에게 준 공급품을 샅샅히 뒤지더니 나열했다.

“이런 걸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굿바이 키티 손가방 하나.”


“설명할게요!” 나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기관총의 개머리판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말하라고 허락할 때만 말해!”

아름다운 인류 동지애 납셨군.


“화장지 한 롤, 현실과 가상의 물건들이 무작위로 가득 적혀 있습니다.”


“그건 제 거 아닌데……!” 중얼거린 나는 한 대 더 얻어맞고 말았다.


“‘캡틴의 자산임’ 이라고 쓰인 종이 한 장. 방독면을 쓴 인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이 자의 오른쪽 옆구리 방향 등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그건 또 언제 붙여놓은 거야? 빌어먹을! 그만 좀 때릴 수 없어요?”


“흠…그게 다인가?”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내 소지품들이 그 대장 앞에 늘어놓아졌다.

“음식도 없고, 물도 없고, 그냥 이게 답니다.” 부하 하나가 손가방과 목록, 사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또 얼빠진 놈이군. 방사능에 머리가 타버린 모양이지.”


“프하?! 난 제정신이라고요!”


“아, 당연히 그러시겠지.” 대원 중 하나가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좋아. 얘기해 보실까, 얼빠진 놈 씨.” 대장은 말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 우아하신 액세서리는 어디서 얻으셨나? 왜 그런 걸 가지고 다니지? 하고많은 미친놈 중에서 이렇게 취향이 세련되신 분은 처음 보는군 그래.” 그는 손가방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캡틴이 별안간 준 거예요. 뭐라더라… 게(Cancer)를 불러온다면서! …물론 그게 정말로 뭘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갖고 가지 않으면 분명히 끝도 없이 해코지를 했을 거라고요.”


모두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내 이야기를 소화하려 했다.

도움이라고는 되지 않는 소리를 떠들었군.


갑자기 다른 대원이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오더니 흥분한 기색으로 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용하지만 빠른 목소리로 무언가를 보고했다.


“정말인가?! …몇이나 되지? …쇠와 살로 된 나무라니… 그럴 리가 있나!” 그들이 하는 대화가 중간중간 들렸다.


“좋아.” 대장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호원들이 대장을 따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흠, 지금 내게 아주 시급한 용건이 있어서 말야. 내가 돌아왔을 땐 좀 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군. 게를 소환하는 손가방이라니, 맙소사! 다음은 또 뭐지?”


“아니, 잠깐만요!” 나는 그들을 향해 비명처럼 외쳤다.

“태그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요! 읽어 봐요, 좀!”

어디 가는 겁니까! 저도 당신들 무리에 끼워 줘요! 샤워가 하고 싶어요! 뭐든 다 얘기할 테니까!”


나를 의자에 묶어 놓은 채 그들은 떠났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훨씬 나은 방식으로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Credits

저널 정리에 도움을 주신 분 :   http://kaitlindragon.deviantart.com/


















Issue 35

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Issue 36

ENTRY 180__25 - 인간 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좋았어! 의자를 넘어뜨렸다! 내 승리야!


…이제 어쩌지?


뚜벅거리는 잭 부츠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고 뭘 한 거야.


“도망가려는 속셈인가, 엉? 실컷 두드려 맞아야 제 주제를 알겠지!” 시야 한 켠에 검은 부츠가 들어왔다. 한숨이 나왔다. 지금까지 목숨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정상인 생존자들은 총잡이 깡패단에 불과했다. 이 폐허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미치거나 혹은 악랄해진다는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는 모양이다.


잠깐만. 지금 그건 뭐지?


나를 잡아들인 사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필터 너머의 향을 맡아 보았다. 지금 내가 느낀 게 샴푸 냄새가 맞나? 가만히 앉아서 얌전한 인질인 척했어야 했어. 그랬으면 세면시설을 같이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협상을 청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갑작스러운 비명이 내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검은 부츠가 발버둥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명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어 거무튀튀하고 끈적한 것이 내 몸 위로 쏟아졌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죽여! …쏴! …으아아아아!” 등 뒤의 복도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총성이 울리다가 그 소리도 숨이 넘어가는 소음과 함께 멎었다. 무언가를 잡아찢는 듯한 질척한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속이 뒤집혔다. 비누는 물 건너 갔군.


뜨거운 붉은색 액체에 세례를 당했다. 나는 피웅덩이에서 벗어나려 몸을 뒤채었다. 그래, 샤워는 했네. 왜 내가 소원만 빌었다 하면 이렇게 뒤틀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지? 비명은 잦아들고 주위는 정적 그 자체였다. 체액의 비도 사그라졌다. 위를 올려다보지는 말자.

내가 저걸 무시하면 저것도 나를 무시할지도 몰라.


불굴의 투지로 나는 문을 향해 기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때 의자에 묶여 있어서는!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덩굴 같은 것이 의자에 엉겨들더니 나를 살피는 듯 들어올리고는 똑바로 앉혔다. 노력해도 다 허사잖아!


“난 먹어봐야 건전지 맛밖에 안 날 거야! …입냄새도 장난 아닐걸! 샤워도 한참 못 했다고!” 앉은 채 반 바퀴 돌려져 새로운 적과 대면한 나는 아무 말이나 주절거렸다.


나를 마주보는 것은 눈알 한 짝이었다. 눈은 좀비의 얼굴 위에서 나를 굶주린 듯한 눈으로 응시했다. 잠깐- 저게 좀비가 맞나? 그 몸체는 무정형의 살덩이에 꼭두각시 인형처럼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아니군, 확실히 좀비는 아니다. 데드존 괴수 가이드북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ㄴㅓ의 소유ㅈㅏ에게 안ㄴㅐ하라! 우ㄹㅣ를 캡틴이ㄹㅏ 불ㄹㅣ는 자ㅇㅔ게 인도ㅎㅏ도록.” 캡틴이 내 등짝에 붙여 놓았었던 종이를 흔들며 괴물이 명령했다. 나는 눈을 치뜨고 그 조잡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논리적인 설명을 찾느라 머리를 굴리며.


“캔서(Cancer)?” 나는 간신히 말을 짜내었다. “너야?”


...



살덩이 해골은 내 목소리에 반응해 몸을 떨었다. 핏방울이 비산했다.

“표식… 메시ㅈㅣ… 메시지가 말하기를… ㄴㅔ DNA에는 우ㄹㅣ를 향한 메모ㄱㅏ 쓰ㅇㅕ 있어…

ㅅㅣ공 정보 메모 ㄱㅏ공 중…


찰스 스ㄴㅣ피, 너는 우ㄹㅣ가 바ㅇㅣ오매트릭스 117ㅇㅣ라는 ㅅㅏ실을 알ㄱㅔ 될 것이ㄷㅏ.”


나는 흉측한 살덩이와 거기에 매달린 해골을 응시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왜? 언제부터? 저런 고기 괴물에게 내 이름을 소개한 적은 없다. 날 미행이라도 하고 있었나? 내 생각을 읽었나? 나에 대해 또 알고 있는 것이 있을까?


“너와 ㄴㅏ는 상당히 막역한 사ㅇㅣ지. 우리는 ㄴㅓ의 모든 것을 알고 있ㅇㅓ.”


모든 것? 방금 만난 판이니 그럴 리가 없다. 멍청한 돌연변이 괴물.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나를 겁먹여서 항복시킬 셈으로 모든 걸 다 아느니 하는 소리를 떠든다.

흠. 난 네 뻔한 속셈에 넘어가 줄 생각이 없단 말이지!


고기 촉수가 나를 묶고 있던 로프를 손쉽게 끊어냈다.


“일어ㄴㅏ도록, 찰스.

우리는 ㄷㅓ 큰 목적을 위해 너를 풀어주었다.

우ㄹㅣ는 함께해야 할 운명ㅇㅣ니까… 아ㅁㅏ도… 영원히.”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적어도 내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나는 붉은 해골에게 소리쳤다.

보나마나 나를 안내원으로 이용해서 사람을 또 잡아먹으려는 심산이 분명하다. 이 식인 생물이 사람을 먹게 할 순 없다. 내 유일한…과하게…미친…친구들을.


잠깐, 뭐… 함께해? 왜 내가 마주치는 괴물들은 죄다 내 심장을 뽑아먹으려 들거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랑 결혼하려고 드는 거야?


“네가 명령을 ㄱㅓ부하려 하는 행우ㅣ는… 용납될 수 없ㄷㅏ. 융합을 속ㅎㅣ 진행하기 위ㅎㅐ서는 너의 협조ㄱㅏ 필수불가결하다. 그렇ㅈㅣ 않으면 우ㄹㅣ는 이 시공으ㅣ 창(窓)을 잃게 될ㅈㅣ도 모르니.

자, 운명을 받ㅇㅏ들이도록. 우ㄹㅣ의 유대관ㄱㅖ를.”


“당장 ㅎㅐ!

그ㄷㅐ로 읊어 - 나는 이ㅇㅔ 바이오매트릭스 117과 ㅅㅣ공간적 동반ㅈㅏ가 되는 ㄱㅖ약을 받아들인ㄷㅏ…

…합으ㅣ해!” 해골이 강요했다.


갑작스럽게, 낯선 사고가 머릿속에 스며들어 나 자신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받아들여.”


“절대 안 해! 내 머릿속에서 나가!” 공포에 질려 소리친 나는 몸을 뒤틀어 뒤로 점프하며 의자를 해골에게 집어던져 해골을 때려눕혔다.

캔서인가 뭔가 하는 저것이 내게 정신조작 능력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소용없을걸.


“찰스! 난 너야… 미래의 너라고… 계약을 받아들여… 이 우주를 위해서야…” 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소리는 점점 커져 이윽고 사고를 집어삼켰다.

이런 정신공격을 멈추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가까운 벽으로 돌진해 서서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 또 박았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나는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 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길한 외압에 저항해야 한다.

머리를 부댈 때마다 목소리는 무뎌지고 무뎌져 마침내 완전히 조용해졌다.


살덩이 해골은 내가 던진 의자와의 드잡이춤을 그쳤다.


“멈춰! ㅇㅣ 무능한 ㄷㅏ세포체! 무슨 짓을 한 ㄱㅓ지?!” 해골은 무너져내렸고 한 짝뿐인 눈알이 머리에서 떨어져 내 쪽으로 굴러왔다.


“게임 오버야.”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눈알 위에 발을 가져가 내리밟았다.


촉수가 내 목을 잡아채 나를 위아래로 흔들어대었다.


“인류 만세!” 악을 쓰며 나는 좌우로 흔들렸다. 또 다른 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하루 동안 2승이라, 승승장구인데!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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