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56
ENTRY 57893__3764 : 최고 관리자 : 알렉산더 그로모프 박사 :
신경 좀비들의 신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화려한 방화벽에 부나방처럼 꼬여들어 잿가루가 되었겠지.
신호 세기 바가 하나하나 사라져가더니 새로운 메뉴가 팝업되어 반짝였다.
“지금까지보다 느린 서비스에 불편을 겪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리드 네트워크 신호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DEX-M 송신기 22.9 버전은 현재 고객님의 지역에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수신 장치의 호환성이 낮습니다.
본사의 세계적 네트워크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에 가입하시겠습니까?
ANNET 버전 9583.1을 지금 다운로드하세요!”
“사양하지.” 대답한 나는 눈을 깜박여 팝업창을 떨쳐냈다.
지팡이에 체중을 맡기며 나는 미소지었다.
도망왔어! 하하! 너무 쉽잖아! 이제 잠시나마 안전해졌다고!
귀를 멍멍하게 하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내 등 뒤의 대지를 후려쳤다.
열로 불타는 먼지구름이 뒤편에서 나를 밀쳐 앞으로 내던졌다.
나는 목이 부러질 뻔하며 바닥을 뒹굴어 자갈더미 위에 엎어졌다.
돌아보자 기괴하게 꼬인 철골들에 감싸인 화염의 벽이 보였다.
그 고층건물이잖아! 이렇게 가까운 곳에 넘어지다니! 빌어먹을!
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머릿속으로 나 자신을 몇 번이고 걷어찼다.
암산과 복합적인 사고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질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건만, 지금은 완전히 스스로를 골탕먹인 꼴이다.
배회하는 신경 구울들을 비껴가기 위해 나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골랐었다. 그리고 내가 택한 진로는 계획과 다르게 (내가 불질렀던) 건물 쪽으로 더 가까워진 듯싶었다.
원래는 불타는 고층건물에서 멀어질 작정이었다. 이렇게 내 머리 위로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만큼 가까이 붙는 게 아니라.
불타는 건물의 하층부가 화염에 완전히 녹아내린 결과 건물 전체가 그 높이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 내 등 뒤로 넘어진 듯했다.
나는 간헐적으로 쿨럭거리며 불길의 열기를 피해 나아갔다.
온 몸이 쑤시고 목이 탄다.
새로운 메뉴가 오른눈에 띄워졌다.
“더우신가요? 목마르신가요? 새로운 맛의 H 2-O를 맛보세요! 더 확실한 수분공급을 위해 수소가 2%나 더!”
장식적인 그래픽의 뭉게구름이 왼눈에 나타나더니 유리 물주전자에 빗방울을 쏟아부었다.
반짝거리는 푸른 물이 유리 주전자에 가득 차 찰랑거린다.
구름은 즐겁게 춤을 추며 둥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웃기지도 않는 광고는 현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라붙은 목이 한층 더해진 갈증으로 따가웠다.
“창 전부 닫아! 뇌신경 접속 종료.” 나는 속삭였다.
“뇌신경 접속은 종료될 수 없습니다.”
“뭐? R/관리자 컨트롤/뇌신경 접속 종료!”
“관리자 보호 우선 프로토콜 1에 의해 이 기능은 작동되지 않습니다.
현재 뇌신경 접속을 종료하면 뇌세포의 42%가 비활성화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지역의 서비스 공급자에게 문의하세요.”
공포에 몸이 떨렸다.
움직이는 작은 구름이 새파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좋은 미래, 내 사랑.” 구름은 애니의 목소리로 말했다.
“목이 마르다면서요?”
나는 제자리에서 비명과 함께 펄쩍 뛰었다.
피어오르는 먼지와 연기의 구름 사이에서 나는 어느새 20세기의 골동품 차량이 가득한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공황에 빠진 나는 그 중 하나를 향해 실수로 눈을 깜박였고 그러자마자 오른눈 위로 정보가 쏟아졌다.
<~~~~~~~~~~~~~~~~~~~~~~~~~~~~~~~~~~~~~~~~~~~~~>
FORD F-250. 힙스터 에디션.
저호환성 가솔린 연소 모델.
자가 드라이빙 기능 미탑재.
접근 시 주의를 요망합니다.
본차와 같은 차종은 장애인/접속불가자 거주 구획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접속불가자는 뇌신경 그리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와 같은 차종을 운전하기도 합니다.
경고 : 해당 차량의 운전자는 일반적으로 수면 및 인간적 감정 등의 요소에 사고구조적 결함을 가진 경우가 많으므로, 차량으로 고객님을 깔아뭉갤 확률이 49% 높습니다.
알림 : 차량과 뇌신경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 마십시오. 본 차량은 말하지 못합니다.
본 차량은 ANNET과 호환되지 않으며, 고객님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고객님에게 “근사한 미래”를 기원하지도 못합니다.
더불어, 본 차량은 고객님이 지정하시는 장소로 자동으로 이동하지 못합니다.
<~~~~~~~~~~~~~~~~~~~~~~~~~~~~~~~~~~~~~~~~~~~~~>
나는 정신사나운 팝업창을 손짓으로 걷어내었다.
갑작스럽게 어딘가에서 바람이 몰아쳐와 나를 덮었던 먼지를 거의 날려보냈다.
내 왼눈 쪽에서 유쾌하게 움직이던 구름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의 아침식사에서 수분 흡수는 중요한 요소죠!”
세 개의 새파란 빛이 흐릿한 안개를 꿰뚫어왔다. 애니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리가 흔들렸다.
포효하는 물의 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보라는 구식 자동차를 손쉽게 들어올려서는 격분하듯 서로 충돌시켰다.
뒷걸음질 친 나는 등골에 훅 밀려오는 불길의 열기를 느꼈다.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없는 막다른 길목이었다.
눈앞에는 몰아치는 물.
등뒤에는 타오르는 불.
“안 돼, 안 돼, 안 돼” 나는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왼눈에서 움직이는 구름이 장난치듯 빙빙 돌며 내게 윙크를 보냈다.
Credits
앞의 4컷은 Shuo Zhou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http://tnounsy.deviantart.com
'Archiv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isode 158 (4) | 2013.11.11 |
---|---|
Episode 157 (18) | 2013.10.12 |
Episode 155 (10) | 2013.09.26 |
Episode 152, 153, 154 (6) | 2013.08.28 |
Episode 150, 151 (6) | 2013.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