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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태양이 뿜어내는 선명한 초록빛 속에서, 나는 무성한 포도덩굴로 나를 옭아매려 하는 눈 세 개 달린 고양이의 형상을 보았다. 이건 내 기억인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저 고양이가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권한' 같은 것을 찾으려 하는 듯했다. 저 고양이가 뭘 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터무니없다. 녹색 눈 세 개가 박힌 고양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덩굴에 묶인 적도 없다. 이 세상에는 나무도, 풀도, 꽃도 없다.
내 정신이 부식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햇살 속에 고양이 같은 건 없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나와 소멸해가는 도시뿐.
존재하는 것은 그저 나와 나의 상상뿐.
마지막으로 다른 인간을 본 지가 얼마나 되었던가.
떠올릴 수 없다.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다.
어째서 기억해낼 수가 없지?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먼지와 불길뿐이다.
끝간데없는 불길이 이미 망가지고 뒤틀린 그들의 몸을 먼지로 화하게 한다.
우리 대원들이 형용할 수 없는 참상 가운데 놓였던 때 이후로 나는 방사능에 절은 사막을 헤매며 무언가를 찾았……
내가 무엇을 찾고 있었지? …희망? 다른 생존자?
지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내 마스크에 한 장 종이쪽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폭풍 같은 파란을 내 정신에 일으키고 만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이게 뭐지?
어린아이가 그린 지도?
이것이 내게 신이 내린 인생 최후의 과제인 것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이 지도가 나를 생존자 무리로 이끌어주리라고 꿈꾸었다.
이 새로운 흐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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