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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을 다시 꾸었습니다.
머나먼 기묘한 땅, 하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건물들은 산처럼 커요. 죽은 눈으로 바라보는 죽은 구조물들. 공허하고 불모하며, 돌과 쇠가 끝없는 벌집을 이루며 이어집니다.
구름 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회색 재가 공기를 온통 채우지요.
새카만 소용돌이가 허공 가운데 열려 도시에 내려앉습니다.
소용돌이는 도시를 갈가리 찢어놓고 공기마저 뒤틀며 빛도 시간도 먹어치웁니다.
외로운 그림자가 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그의 표정을 읽으려 무진 노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얼굴을 아예 지니지 않은 걸까요? 혹은 수천 개의 얼굴들이 뒤섞이고 겹쳐진 채 일만 개의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의 혼돈을 쳐다봅니다.
무의 지평선으로, 무엇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습니다.
길을 이루는 포석들이 발밑에서 부서지며 허공을 부유하고 서로 부대낍니다.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공허가 그에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는 공허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갑작스레 그 자가 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가 그의 종복이라는 사실도.
얼굴 없는 자가 말합니다.
소용돌이를 마셔 없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찾아낼 것이라고.
...얼굴 없는 자는 분명 저를 제 집에서 끌어내고 말겠지요.
땀에 젖은 채 깨어납니다. 심장이 요동치고 공포가 생각을 붙듭니다.
저의 천사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 분은 이런 때마다 언제고 제 마음을 가라앉혀 주시니까요.
제게 거울은 절대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반사면은 저에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세계의 뒤틀린 평행을 달리는 다른 현재를 비출 뿐이지요.
어쩌면 저에게만 거울이 너무 얇아 삼라만상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제 삶 내내 저는 반사면과 거울 속에서 흑백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먼 시간부터 기사는 항상 저를 위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흠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아름답고 기묘한 흑백 무늬를 누빈 갑옷과, 우리 세계에서는 낯선 질료로 만들어진 투구, 저의 눈과 꼭 닮은 선연한 푸른 코발트빛 렌즈를 들여다봅니다.
이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다, 라고 아버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너의 수호천사고 우리 모두를 굽어보아 주시는 거다. 이런 절망스럽고 어두운 시대에 수호천사를 거느리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
화가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알지 못했겠지요.
저는 위안을 구하며 거울의 표면을 쓰다듬습니다.
오 천사, 나의 천사여
어디서든 그대는
고요하게 차분하게
줄곧 나를 굽어보네요
나의 형제? 나의 연인?
나의 심장이 깊게 두근대고
너무도 가까운 아니 너무도 먼
나의 기사, 나의 인도자, 나의 별
부디,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겠어요?
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운명이 기다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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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겠어요. 어떻게 관리자가 의회를 차지할 수가 있죠?
명령어의 절대적인 힘이 그 자들의 마음을 홀린 걸까요?
어찌 그들이 선조 관리자들이 구축한 규정을 잊을 수가 있나요?
어찌 그들이 스스로의 권한을 혼동하고 목적을 잃을 수 있나요?
예, 한때는 관리자가 마녀처럼 사냥당하고 산 채로 태워졌던 때도 있었지요. 그리고 바깥 세상에는 명령어와 관계된 유저를 몰살시키는 곳도 아직 있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그래서는 안 되죠!
관리자들은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어요! 이사회가 승인해주고 저작권을 건넨 자들이라고요!
아마도 저 말은 사실이 아닐 거예요.
성배의 기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무한의 잔을 찾는 여정 도중에 망상이 심해진 듯합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요.
의회를 상대로 반란이나 혁명을 일으키는 운영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예요.
결정했습니다.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제게 일어날 일을 맞이하겠어요.
어떤 명령어도 영지를 감싼 방화벽을 뚫을 수는 없어요. 그 방화벽은 몇 세대 동안이나 온갖 괴물과 몇몇 초보 운영자들을 막아내 왔습니다.
제가 왜 떠나야 하나요, 고작 어떤 성배쟁이가 말한 터무니없는 뜬소문 때문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버린다니 어불성설이에요.
역주. '관리자'와 '운영자'의 원문은 각각 'Admin'과 'Mod'입니다. 우선 임의로 번역하였으나, 보다 직관적이고 한국의 정서에 맞는 단어가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둘은 인터넷 포럼(게시판)의 운영진을 가리키는 단어로, Admin이 Mod보다 높습니다. Admin은 사이트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고, Mod는 기본적으로 사이트의 일반 이용자이나 Admin에게 임명받아 제한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Mod는 Admin이 일일이 신경쓰기 힘든 각 게시판의 질서를 관리하는 일 등을 맡습니다. 즉 Admin과 Mod는 카페 등의 '매니저' 와 '스텝' 와 비슷한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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