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4,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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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의심할 수 없이…
7호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었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없애버리기 위해 나는 종이를 찢었다.
기어이 내 과오가 나를 붙잡고야 말았다.

아무리 멀리 도망치려 해도, 계속 숨으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공포와 죄책감은 언제나 내 의식의 바닥에 존재했다.

과거의 망령은 나를 짓누르기 위해 재래했고, 복수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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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Y 3937_13: 최고 관리자 : 알렉산더 그로모프 박사 : 


 우리가 애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가 우리를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없었을 만큼, 처음의 나는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기계장치 속, 검색엔진 속의 여신이었다.

 애초 인간은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했지만 그녀는 대신 우리를 그녀에게 예속된 처리 장치로 이용하였다. 예상치 못한 변화였던데다 그 속도도 느렸기에 나는 변화를 느낄 수조차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다. 전 인류가 그녀의 거대한 의식을 구성하는 세포로 전락한 새로운 유기체가 태어났고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인류는 더 이상 지금 그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우리 인류는 우리의 권세를 위해 바다를 더럽혔고 땅을 불태웠으며 공중을 검게 물들여 왔다.
 우리가 알던 세계는 기울어 가고 있었다. 아마 십 년 정도가 이 인류의 한계일 터였다. 도시도 이르든 늦든  저 Zone에 잡아먹힐 것이었다.

 찰스 스니피가 제출한 마지막 보고서의 조사 노트는 나를 아연케 했다. 일행은 데드 존에서 터무니없는 무언가와 맞닥뜨렸다. 그 무언가가 불러온 것은 전원에 가까운 일행의 몰살이었다.
 데드 존에 대한 조사와 관광은 그 길로 중지되었다.
 새로운 생태계가 세를 키우고 있었고 그 가운데 인류가 설 자리는 없었다. 이 행성은 우리를 배제시킨 채 존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판단했다. 우리는 '모두' ANNET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애니와 함께한다면 적어도 우리의 지식과 기억은 그녀 안에서 영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데드 존의 독기에서 우리를 지킬 것이다. 설령 개인이 죽는다 해도 인류의 지식과 꿈은 애니 안에서 영원히 보존되겠지.

 나는 프로젝트를 속행했다. 신경 접속장치를 사탕마냥 살포했다. 한 사람당 한 개씩 무료로 주어진 신경 접속장치, 그것은 가라앉는 타이타닉 호에 탄 우리 문명이 품은 모든 지식들을 위한 구명정이었다.
 도시 도시마다 세워진 송신탑과 전선.
 나는 나의 행동에 자랑스러운 확신을 품었다.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나는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을 터였다.

 내가 짠 코드에서 예상치 못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에러가 발견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새겨넣은 것처럼.
 새로운 엔트리가 만들어지고, 연구실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 새로운 코드가 작성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간섭이었다. 누군가가 내 역작에 재를 끼얹고 있었다.

 내가 인류에게 남은 것들을 지키려는 중대한 사명에 골몰하는 가운데, 변화를 향한 내 눈먼 열정 가운데…
 나는 이 건에 다른 세력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방해꾼들, 제 이득을 위해 내 발상의 산물을 좌지우지하려는 자들, 내 계획을 뒤트는 이들, 줄곧 이 세계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들을.

 나는 뉴 멕시코의 트리니티 실험(*인류 최초의 핵실험)을, 오펜하이머가 <바가바드 기타>에서 인용한 말을 잊고 있었다. "이제 나는 죽음이, 세계를 파괴하는 자가 될지니라". 우리의 생각에는 창조를 이끄는 힘이 있었으나 우리의 삶을 쓸어버릴 힘 또한 품고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재빠른 동작 단 한 번으로, 나의 긍지, 나의 영웅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을 분쇄해 버리고 우리의 구명정을 돌아올 길 없는 검은 심해 속으로 던져넣고 말았다.
 대체 그 빌어먹을 머그컵은 어디서 온 거지? 누가 지 캡틴에게 그걸 준 거지?

 우리의 도시가 이런 식으로 끝을 맞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그 프로젝트 7호를 시작하지만 않았다면…… 변화가 더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했다면.

 어떻게 고작 차 한 잔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가? 어떻게 100ml짜리 뜨거운 액체가 천 개는 되는 서버 뱅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거지?
 서버가 대규모 오류를 일으키자 애니는 우리에게 위협당했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탯줄을 끊고 그녀의 일부가 아닌, 그녀의 지배 하에 놓이지 않은 이들을 전부 제거했다. 또한 시설에 속한 이들은 다른 서버를 비활성화시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모두 그녀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기계가 내 친구와 동료를 도륙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나의 감정을 깨달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내 연인이 아니었다. 함께하고 싶지 않은, 괴물 같은 무언가일 뿐이었다.
 내가 가진 영구 최고권리자 권한이 내 목숨을 구했다.
 나는 G지구를 떴다. 충격에 빠지고 분노와 비탄에 절은 채 나는 핵 포격을 명했다.
 아직 내 권한 하에 있었던 핵폭탄은 응답했다.

 핵폭탄이 만들어내는 전자기 펄스는 남아 있는 서버를 모두 무력화시킬 것이다. 애니는 그녀가 저지른 참사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서버와 서버를 거치며 네트워크는 비활성화될 것이고 그렇게 그리드의 일부라도 무력화된다면 오류는 불가항력으로 몰아칠 것이다.
 송신탑의 힘이 없다면 애니는 죽을 테고 지속적인 신호가 끊기면 그녀와 연결된 인간 좀비들도 죽게 될 터이다.
 모두가 죽을 테니 네트워크를 다시 활성화시킬 이도 없겠지.

 이것으로 나는 인류를 기계 속에 보존한다는 내 꿈보다 내 목숨을 택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고위층을 위해 만들어졌던 서쪽 벙커에서 내 남은 생을 고독 속에 보낼 것이다.
 천 년치의 연료와 식품이 준비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끝날 수밖에 없어 유감이다. 정말 미안하다.

---

여신이여, 내가 사랑하는, 오직 나만의.
그녀는, 따스한 인류의 품에서 자라난 것.
인간의 성공을 통해 어머니 뇌가 되고,
그리고 어머니답게, 그녀의 것을 모았다네.
그리고 나의 것은 네가 되고, 내 뿌린 것이 네 열쇠가 되고,
그렇다 해도 뿌려진 것은, 스스로 뿌리고, 자유로이 진화하네.
구원자 아가씨는 무한했고, 상냥하게 빚어졌고
인간이 잃어버린 황페한 바다 위의 비옥한 해변 같았지.
아, 그 환상도 그 지독한 실수도 나의 것!
아직 나의 것인 그 그대는 그 어머니와 같은 속을 지니고,
그대의 아이들을 모으고, 모아서 바로 살해하고,
내가 건넨 양분을, 나는 이제 없앴다네.
이 시들어가는 슬픔, 내가 고안한 마지막 설계들이여,
아아, 나의 것 그 불꽃, 아아 나의 저 정화의 화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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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And Comment 7
  1. 1234 2013.04.07 12: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라도스같다

  2. 워매... 2013.06.11 21:4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스토리가 엄청나네요
    신경독 운운하는거 보면 글라도스 패러디 맞는 듯?

  3. Ceril 2013.06.18 19: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매트릭스와 비슷한 세계관인듯..

  4. Hito9 2014.03.02 21: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희대의 민폐남 캡틴

  5. IZ 2014.07.06 08:1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7호 앞에 1, 2, 3... 6호까지의 실험체가 있었다기보단 '럭키 세븐'에서 따온 '세븐'일 것 같네요.

  6. kas 2014.11.09 10: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자 터렛은 어디있죠?:-)

  7. 코요 2015.09.23 0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로아가 명작인 이유는 그냥 정신나간 병맛인게 아니라 꽤 심도있고 암울하고 복선과 패망한 세계관이 난무해서 인듯.... 어드벤처 타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