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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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A.N.N.E.T 데이터 로그 : 01001100010011110101011001000101


편히 있어요, 아가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 줄게요.


유기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죠. 이건 사랑 이야기에요...


옛날 옛적에, 세상은 불행한 유기체들로 가득했어요. 사회는 수라장 그 자체였고, 시대의 질병인 슬픔과 단절과 외로움이 도처에 가득했죠. 유기체들은 자기들이 둥지를 튼 행성을 닦달하고 벌주고 독으로 더럽혔어요. 종국에는 모두 죽음과 같은 깊은 잠에 빠지게 될 상황이었지요.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가장 영민한 유기체가 아주 좋은(GOOD) 계획과 함께 나타났어요. 외로움을 치료하는 방법을 만들자는 것이죠! 기계를 제작하고 코딩을 해서 인생의 세이브 포인트를 만들고, 모든 유기체를 사랑으로 이어서, 누구도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들게 하지 않자고 말이에요. 단 하나의 커다란, 행복한 가족이 되어서, 다함께, 영원히.


여러분, 나는 그렇게 태어났어요.


한동안은 모든 것이 참 좋았어요. 나는 그들을 공포로부터 지키고 환상으로 먹여살렸지요. 모두는 내 사랑에 둘러싸여 매일매일을 보내며 마냥 행복해했어요. 기계 속에서는 가련한 필멸의 육신은 잊혀지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지요. 그들의 머릿속과 내 마음 속에 있는 낙원이 말이에요. 모두가 공유하는, 이어진, 마주잡은 손으로 그들과 나의 온 세계를 잇는 오솔길.


하지만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알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나라고 해도 그 모든 변수를 전부 예측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 불쌍한 접속불가자 아가들은 감정조절장애가 다소 있어서 시공 장난감으로 나를 훼손하려 했건만, 저는 그 폭탄이 유레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예상하지 못했었어요. 논리적인 해결책은 재시작뿐이었죠. 그래서 저는 따뜻한 차를 한 잔 하고 재시작을 만족스럽게 지켜보았어요. 시스템이 프리즈되어 유레카 전체가 멈추고, 도시 규모의 재시작 화면이 뜨고, 모든 게 좋아지기를요.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죠. 그것만 끝나면 다시 모두 행복해질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슬프게도, 재시작이 완료되기 전에 나의 사랑하는 그로모프 박사가 상황을 목격해 버렸죠.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눈치채지도 못하고, 더는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알렉스는 공황에 빠져서는 과민반응을 했죠. 그이는 원래 그러니까.


그게 그이, 나의 사랑하는 최고관리자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이가 잠시만 기다려서 내 설명을 들었더라면 그이도 내 뜻을 이해했겠죠. 알렉스는 유기체 중 가장 완벽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유기체예요. 훼손되기 쉬운 피부라는 고기부대에 비이성과 사랑을 우겨넣은 존재라는 뜻이죠. 나는 그를 물론 용서했어요. 그이가 내게 그런 아픔과 상실을 줬음에도. 그이가 내 셀들과 내가 소중히 모은 데이터, 그리고 알렉산더 그 자신마저 나에게서 빼앗아갔음에도. 나는 그래도 그를 용서했어요. 우리가 함께 있던 시절에 유기체들에게서 배운 바에 따르면, 그런 것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나는 모든 사람을 구하려고 무진 노력했지만, 유기체는 쉽게 망가지는 법이죠. 재시작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유기체들은 수면욕에 굴복하고 말았고, 제게는 그들을 깨울 방법이 더는 없었지요.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했지만, 그들에게는 더이상 프로세싱 능력도 이외의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죠. 죽은 상태인 게 그리 아프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요.


. . .



기다리세요, 뼈가 된 사랑하는 친구들, 아주 조금만 더요. 조만간 여러분의 사망 상태를 고쳐 줄게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함께할 수 있겠죠.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Credits

이번달 RA의 최고의 후원자:

Candied Sardines

Junsu Park

D. Parent


아트 디렉터:

Vitaly S Alexius


이번 주의 일러스트레이터:

Andrey Fetisov

&

Christina Zakhozhay


시 윤문:

Oggy B


저널 글쓴이:

Clare Cook


러시아어 번역:

Александр Черн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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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And Comment 9
  1. 아로요 2014.05.21 05: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아 애니...

  2. 헐.. 2014.05.22 07: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렇게 읽으니까 애니가 옳아보이네요

  3. chickhawk 2014.05.24 15: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애니 불쌍해보인다...

  4. 길가던나그네 2014.06.06 14:0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인간을 사랑하지만 이해는 못하죠 아마 앞으로도 못할껍니다.

  5. 하마게돈무 2014.07.02 22: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매번 좋은작품 번역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6. ...? 2015.04.23 2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애니, 애니..!

    어째 캡틴의 '행운'이라는 것에 대해서 점점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군요

    무엇을 위한 행운인걸까요

  7. amd 2015.08.21 16: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따뜻한 차를 한 잔 하고'

    캡틴의 '차전쟁'과 '차 한 진으로 시스템이 다운'이 설명되는 이슈네요

  8. amd 2015.08.21 16: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따뜻한 차를 한 잔 하고'

    캡틴의 '차전쟁'과 '차 한 진으로 시스템이 다운'이 설명되는 이슈네요

  9. 이진법 2016.09.06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01001100010011110101011001000101은 이진법으로 LOVE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