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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69







Issue 169


ENTRY 357__955 - 인간 실험대상 찰스 스니피 - 개인 ID 04477645.


햇빛이다! 진짜 햇빛이야!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선명해 보였다. 폐허는 오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무너진 것들의 삭막한 감각으로 가득했다.


캡틴이 약속했던 대로, 어떻게든 봄이 왔다. 적어도 이 한 줌의 햇살 안에는 봄이 있었다.


하늘에서는 리바이어던 마더십 서버 큐브가 조각나 본체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거대한 큐브가 되어 흩어졌다. 하나하나가 도시의 마천루보다도 컸다.

그 큐브들이 다시금 작은, 그리고 가일층 작은 큐브들로 분해되었다. 큐브 무리는 허공을 마치 고기떼처럼 유영하며 모이고 흩어졌다.


불평이 절로 나왔다. “인간 사냥 위원회가 납시는군.”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을 배달하는 거야! 선물이 내리고 있어!” 파일럿이 들떠서는 확신조로 말했다.


“저건 분명 공중 광고일세! 택배의 날이 임박했으니 고대부터 내려온 관습에 따라 나가떨어질 때까지 쇼핑을 해야겠어!” 캡틴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캡틴도 ANNET 고객이었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공중 광고가 보인다는 말에 붙일 수 있는 논리적인 설명은 그것뿐이다. 그럼 캡틴이 미친 것도  갑자기 ANNET과 연결이 끊긴 탓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캡틴은 완전히 자기 세상에 갇혀 있으니 말이지.


“NEIN(아니)! 신 건포도처럼 굴지 말게, 스니피! 블랙 프라이데이가 지척일세!” 캡틴은 날 때리며 멋대로 내 몸을 더듬거렸다. 덕분에 생각이 끊겼다.

“좋은(GOOD) 쇼핑 테라피가 시름을 치료해 줄 걸세!”


“그게 가슴에 칼 꽂힌 사람도 낫게 해 준답니까?” 나는 비아냥조로 물었다.


“당연하잖나! 당장 모든 흥청망청 쇼핑과 휴일 여가활동에 끼어서 먹고 마시게! 그러지 않으면 퇴직금도 없이 모가지인 줄 알게나!"


나는 동의했다. “예… 저 큐브한테 목이 날아가는 건 확실히 별로겠죠.” 


보아하니 큐브 떼 중 우리 쪽으로 바로 날아오는 무리는 없었다. 우리를 발견 못 했나? 그럼 저것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한 안전할까? 아니면 저 큐브들은 나는 모르는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건가?


나는 자문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이지.

어쩌면 큐브 드론이 당장이라도 날 쫓아와서 레이저로 조각낼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공간적-비-사망 상태라서 스캔에 걸리지 않은 걸까?

아마 나는 심박이 없어서 저들에게 잡히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득의만만한 캡틴을 보았다. 큐브가 분해할 상대 중에는 저 사… 여…아니 남ㅈ… 뭐였더라?

슬슬 짜증나는데. 나는 심지어 죽어서 온 세상과 비동기화된 상태에서도 캡틴의 성별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캡틴에게는 분명히 무언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밝혀져서는 안 될 무시무시한 진실? 아니면…? 제길!

캡틴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혼란으로 불탔다.

부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려는 기미가 나를 압박했다. 의식적으로 그 감각에 맞서려 하자 거대한 파국의 예감이 머릿속을 덮쳐왔다. 세계가 접히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더는 궁금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듯.

만약 내가 파일럿이 주절거리던 ‘우주 마법사’ 운운하는 헛소리를 믿었었다면 지금쯤 나는 캡틴이 내게 “이몸을 이해하려 들지 말지어다” 라는 주문을 걸었다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그것도 최대 출력으로.

으음. 어쨌든 캡틴이 누구건간에, 저 양반은 큐브에게 해를 입지 않을 확률이 높다. 캡틴의 이 ‘이해불가능성’이 큐브의 조준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초조해하고 있군그래, 무슈!” 캡틴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게, 그러다가는 머리뚜껑이 날아가 버리겠어. 파일럿의 긍정적인 태도를 본받게나!”


그럼 파일럿은?

큐브는 파일럿에게, 그들의 일원이지만 마음은 인간인 자에게 총구를 겨눌까? 아마 고장난 Dex는 딱히 네트워크에 위협이 되지 않을 터다.


“유쾌한 성가대 사인방을 완성하려면 엔지를 찾아야겠군!” 캡틴이 흥에 취한 목소리로 명했다.


네 번째 일행? 당연히!

이 도시 위에 남은 유일한 인간 말이지?

엔지? 그 불바다와 물바다에서 살아남으셨나요?

지금 어디 계시죠… 그로모프 박사님?



Credits

아트 디렉터: http://alexiuss.deviantart.com/
일러스트레이터:  http://hughebdy.deviantart.com

2번째 컷의 추가 3D 렌더링 작업: Kevin 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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