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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97





Issue 197


키티호크: 봉제인형 형태, G-시스템

:G-Dir 직원 사용자 ID # 44-11-55 :

소속: 자동응답기 비서




에코는 괜찮은 아가씨예요.그녀는 말도 안 되는 매체(재포맷된 생화학 무기)에 저장되어 있던 애니의 이상한 백업인데, 자기가 알렉산더 그로모프 박사를 찾는 걸 도와준다면 제 망가진 주인님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죠.

저는 동의했고요.

저는 Directorate의 비밀을 이것저것 꽤 알고 있어요. 달에 가는 방법도요(지금 그로모프 박사가 숨어 있을 법한 그 달 말이에요).

저와 에코는 주인님의 애완동물인 “포토샵”을 만났어요. 썩 훌륭한 일행이더군요. 날쌔다 보니 바쁜 여행에 제격이에요.

우리 셋은 달으로 갈 수단을 하이재킹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주인님의 손상된 데이터 파일을 통해서, 달 관광객들이 비밀리에 도착할 일정이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곧 착륙할 테고요.

커다란 버섯 뒤에 숨어서 달 관광선이 착륙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에코와 포토샵에게 저의 이야기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주인님이 어쩌다가 망가지셨는지에 대해서요).



. . .


제 주인님은 DEX십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사실이 딱히 그분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들지는 않았죠. 반대로 주인님은 그 사무실에 해괴망측한 문제를 안고 찾아오는 유저들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보였어요.

G-수퍼센터에서 저를 구입하신 주인님은 애틋하게도 제게 “키티호크”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제 모습을 보니 이전의 삶이 생각난다고 하시면서요.


“DEX는 이전의 삶을 기억해서는 안 돼요.” 저는 주인님께 말했습니다. 주인님은 정확히는 자기는 기억을 하는 게 아니라, 겪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뭉개진 이미지을 떠올리는 것 정도가 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이름으로는 키티호크가 적당할 거라고 말씀하시고는 자기를 “파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어요. 사립 탐정(Private Investigator)의 줄임말이면서, 수학 상수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고요(DEX로서의 천성과 관련이 있겠죠).


저희 둘은 좋은 팀으로 일했어요. 저는 주인님의 충직한 전화 비서였고, 면담 예약을 정리하거나 스팸봇이 헛소리를 하며 훼방을 놓지 않도록 막기도 했었어요. 스팸봇은 유저분들을 베끼기를 좋아하다 보니 진짜 전화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지만, 그 녀석들의 교활한 술수 정도는 꿰고 있거든요.


파이는 확실히 이상한 DEX였어요. 호환성 떨어지는 힙스터풍 물건을 좋아했죠. 보통 접속불가자들이 쓰는 그런 물건 말이에요. 어쩌면 주인님은 그들이 쓰는 물건을 사용해 보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하신 것일지도 몰라요. 보험과 관련된 사건에는 접속불가자들이 왕왕 얽히곤 했으니까요.


. . 


안전부 책임자와 짧게 대화를 나눈 뒤 파이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무실 지키고 있어. 보수가 좋은 고객들은 특히 눈여겨봐 두고. 곧 돌아오지.”


저는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좋은 사냥 되세요!” 문을 닫으며 제 쪽으로 눈을 찡긋해 보이는 주인님에게 저는 행운을 빌어 드렸습니다.


그 동안 48294859540357체의 스팸봇과 92명의 그럴듯한 고객님이 전화해 주셨죠. 그래서 내내 바빴어요.


. . .


문이 부서지듯 열렸습니다. 그 뒤에는 파이의 모습이 있었어요.

주인님의 유기체로 구성된 얼굴은 거의 날아가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격한 황망함과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저를 보셨습니다.


"파이! 얼굴이 왜 그렇게 된 거예요?!"


“파인애플에게 빼앗겼어!” 비명처럼 말한 파이는 바닥에 털퍽 쓰러지며 연기를 피워올렸습니다. 주인님이 입은 옷은 불이 붙은데다 72군데나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뇌신경파에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머리에 내장된 뇌신경 인터페이스 칩이 심하게 손상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분이 쓰시던 녹색 힙스터풍 안경(구식 뇌신경 수신기이면서 투시기)도 사라진 채였습니다. G-시스템에 연결된 구식 태블릿도 먹통이었습니다.


저는 혼비백산해 외쳤습니다. “파이! 일어나 봐요! 파이!”


소방 알람이 작동해 흰색 화학약품 구름이 방을 덮으며 불을 껐습니다.


소화 분말을 두껍게 뒤집어쓴 파이는 별안간 펄쩍 몸을 일으키더니 가루를 손으로 푹푹 찔렀습니다.


“퍼ㅓㄹ펄.... 눈이 옵니다아아... 크리스마스 너어어어무 좋아. 칠면조 먹기 따아ㅏ악이고... 양초도 어어엄청 많구.” 그리고 그는 다시 퍽석 뒤로 눕더니 가루 위에 팔다리를 저어 천사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님은 얼굴과 함께 이성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DEX 수리팀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두 명의 DEX 유닛이 문앞에 도착했습니다. 좀 이상할 정도 빨리요. (다른 사람이 이미 주인님에 대해 저보다 먼저 신고했을지도 모르죠).

둘은 파이를 바닥에서 들어올렸습니다.


“누구세여? 저희 집에서 뭐 하셈?” 파이가 취한 듯이 주절거렸습니다.


해친슨 씨. 많이 다치셨습니다. 같이 가시죠.” 두 DEX가 재생하듯 말했습니다.


파이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둘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해친슨 씨! 도와드리려는 겁니다!” 두 DEX 경관이 파이를 다시 붙들려 했습니다.


“내 이름 그거 아냐! 나는 기여운 찻주전자 롤리팝 씨란 말야!” 파이는 빽 소리치며 몸을 뒤틀어 사무실을 훌쩍 가로질렀습니다.


깔깔거리며 그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옆돌기로 거리를 벌렸습니다.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DEX 회수팀이 전자기총을 꺼내들어 파이를 겨냥했습니다. “저항을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습니다!” 둘이 한 목소리로 파이에게 윽박질렀습니다. 집무 책상 뒤에 선 파이는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딱 질색이야!” 소리친 파이는 책상을 두 DEX의 방향으로 뒤엎었습니다. 저는 책상에서 굴러떨어졌고 책상은 사무실을 가로질러 두 경관을 벽에 처박았습니다. 바로 그 둘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에요. 거진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책상을 알량한 EMP총이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폭발이 사무실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파이는 사무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엄마야. 완전 난장판을 만들었잖아!”


주인님은 저를 집어들어 먼지를 털어 주었습니다. “미안, 친구.”


저는 말했습니다. “파이, DEX 수리시설에 가셔야 해요! 도와주실 다른 경관님들을 부를게요!”


“파이? 그게 내 이름? 맘에 들어!” 파이는 낄낄거렸습니다. “그럼 넌 이름이 뭐야, 아기새야?”


저는 대답했습니다. “전 키티호크예요. 제발 진정해요, 파이. 당신……”


“작고 성난 벌처러어어어어엄 자유우우우우로워지고 싶어어어어어라아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파이는 등 뒤의 창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4체의 DEX 유닛이 한때 사무실의 문이었던 그을린 구멍으로 쇄도해오기 직전에요.


“나아아아ㅏㅏㅏ암국의 파리의 해변으로 나를 태우고 날아가 줘, 새 친구우우우!” 저를 끌어안으며 파이가 말해습니다.


“파이!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저는 흐느꼈습니다. 저희 사무실의 산산조각 난 창문에서 목을 빼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DEX 경관들이 순식간에 까마득한 위편으로 멀어졌습니다. 우리 사무실은 520층에 있었어요. 낙하하는 우리의 곁으로 광풍이 스쳤습니다.


“날갯짓해 봐, 작은 새야. 땅이 어어어엄청 빨리 가까워지고 있단 말야!”


저는 더듬거렸습니다. “저... 전 못 날아요! 전 그냥 자동응답기란 말예요!”


“오... 이런 거짓말쟁이가 있나... 그치만 작은 새라도 사무직에서 일할 수도 있는 거겠지 뭐.” 파이는 중얼중얼댔습니다.


택시 셔틀 위로 떨어진 우리는 지붕을 뚫고 뒷좌석의 시트에 처박혔습니다.


“안녕하세요, 손님들. 어지간히도 바쁘신 모양입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DEX 택시기사가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붕을 박살내고 불시착했는데도 놀라지도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주에 한 번씩은 있기라도 한 것처럼요. 


저는 입을 열었습니다. “덱스 수리 시ㅅ…”


“그런 건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니야아!” 파이는 소리치며 저를 짤짤 흔들었습니다.


“DEX 수리 시설 말이죠.” 택시기사는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습니다.


파이는 행선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택시의 승객석과 운전석을 가르는 벽을 훌쩍 뛰어넘어 앞좌석을 꿰찼습니다.


“손님, 차량에 손상을 입히시면 곤란합니다. 애니가 청구서를 보낼 거예요.” 택시기사가 못을 박았습니다.


“이 비행 여우 맘에 들었어. 여우 조종사, 이거 나한테 팔아!” 파이는 택시의 대시보드를 쿡쿡 찔러댔습니다.


“10,000,000신용도입니다.” 운전사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습니다.


“딜!” 대답한 파이는 운전대를 붙들더니 운전사를 택시 밖으로 밀쳐 버렸습니다.


“거래 감사합니다아아ㅏ아ㅏ아아아...” 운전사는 발밑의 구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우리의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숫자를 침통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파이, 당신 잔고가…” 저는 입을 열려 했습니다.


파이는 제 말문을 막았습니다. “쉬이이이이잇… 뭔가 사아아악한 소리가 나! 열받은 돼지 괴물들의 통곡 소리야!”


사이렌 소리였습니다. DEX 경관들이 호버바이크를 타고 우리를 뒤쫓고 있었습니다.


“우리 왜 여기 있는 거야, 키티호크 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파이는 갑자기 혼란에 빠졌는지 저를 코앞에 붙들며 물었습니다.


“파이, 당신은 찰스 스니피라는 유저를 붙잡으러 나갔었어요. 그러고 얼굴이 날아간 채 돌아왔고요. 제발… 파이, 당신 지금 당장 수리받아야 돼요.”


“그 스니피이이이이이라는 이름… 엄청 수상한 양반 같은데. 꼭 잡아서 멋진 자장가를 집행해 줘야겠지? 그치?” 파이가 물어왔습니다.


“네. 하지만 우선 수리 시설에 들르는 게 훨씬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다시 강조했습니다.


“거기 싫어! 길다란 팔이 막 이상한 델 만지려고 한단 말야!” 파이는 빽 소리치며 택시의 대시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치더니, 운전대를 잡고 아래편의 스모그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택시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도와주세요! 이 사람이 지금 안전장치 매커니즘을 고장냈어요!”


저는 택시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전 그냥 봉제인형 모양 자동응답기예요. 주인님을 말릴 방법이 없어요.”


“그럼 경찰한테 위치 정보를 보낼게요.”


“좋아요!”


“작당들 그만 해!” 파이는 우리를 노려보더니 아까 전 대시보드에 냈던 스파크가 튀는 구멍으로 손을 쑤셔넣어 작은 마이크로칩을 뽑아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GPS칩을 뽑았어요!” 택시가 불평했습니다.


“지금부터 스니삐한 토끼를 붙잡기 위한 신비로운 여행을 시작합니다아아! 그러려면 꼬리를 떼에에에ㅔ어내야죠!” 파이는 GPS칩을 차창 밖으로 집어던졌습니다.


. . .


우리는 사무 빌딩에 도착했습니다. 유리와 몇 겹의 벽을 박살내 처박히는 방식으로요.


파이는 완전히 폐차가 된 택시에서 몸을 굴려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습니다. “재밌는 놀이기구였어! 제 점수는요! 별 3.2개임다!”


저는 한숨을 쉬었고요.


파이는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사무실의 의자 하나를 꿰차고 앉더니 빨간 스테이플러를 눌러 컴퓨터 터미널 명령어 창을 실행시켰습니다.


파이는 명령했습니다. “컴퓨터 친구. 찰스 스니피를 찾아 줘! 등록번호느으으은 04477645!”


“유저 찰스 스니피를 탐색하는 중입니다. 유저 04477645는 33-25-19 병원에서 이동되어 현재 밴 23-92-26에 있으며, 해당 차량은 지금 본 건물의 354층에 있습니다.”


“조오오아쓰!” 파이는 손뼉을 쳤습니다. “옳게 따라가고 있어! 역시 내 오른눈이 이 건물을 택했던 건 옳았다니까!”


그는 사무실을 거침없이 가로질렀습니다. 직원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우리를 보며 화닥닥 좌우로 물러났습니다. 얼굴이 없는 파이의 모습이 친근해 보이지는 않았겠죠.


저는 빠르게 깎여나가고 있는 잔고를 확인하며 간청했습니다. “파이, 당신 지금 얼굴이 없어요. 이런 꼴로 그냥 돌아다닐 순 없다고요! 유저분들이 겁을 먹으시잖아요! 고소당하고 있다고요!”


"얼굴은 또 자라나!" 파이가 대답했죠. "우린 찰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에 버ㅓ어어얼써 늦었단 말야!"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섰습니다. 파이는 아래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에서 딩동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자 올라탔습니다. 직원들이 겁에 질려 파이를 뚫어져라 보았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여직원 하나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쉬이이이잇! 지금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지 말임다!” 파이는 그을리고 뒤틀린 손에서 뼈대밖에 남지 않은 금속 손가락을 세워 그 여직원의 입 앞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녀는 뒤로 넘어가며 졸도했고요.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우르르 달려나갔습니다. 쓰러진 여성분만 덩그러니 남은 채로요.


엘리베이터는 354층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찾고 있던 밴은 착륙 플랫폼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실랑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병원에 있던 사람을 납치하는 법이 어딨냐고요!”


“여기 있죠! 당신은 우리의 리더니까요!”


“난 그쪽들 리더 같은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파이는 밴의 문을 경첩째로 뜯어냈습니다.

그는 밴으로 몸을 디밀었습니다. “안녕, 우리 귀여운 아가들! 나 보고 싶었쪙?”


“아오 씨, DEX잖아! 밟아!” 여자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살짝 들여다보인 차 안에서, 찰스 스니피가 허공에 뜬 병원용 침대에 꽁꽁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기 있는 게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죠.


밴은 급선회하며 파이와 저를 원심력으로 집어던졌습니다. 마지막 순간 파이는 차 문의 아랫쪽 모서리를 붙들었습니다.


우리를 떨어내려 밴은 좌우로 요동쳤지만 파이는 붙든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교통안전 수칙을 몇 개나 여겼는지 알아! 정지시켜 줄 테다!” 파이는 다리를 저어 차의 왼쪽 터빈을 걷어찼고 터빈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구부러져 버렸습니다. 차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차 안에 탄 사람들에게서 비명과 욕설이 터져나왔습니다.

커다란 라떼 간판과 격돌한 밴은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 . .


커다란 “T”와 “A” 모양 간판을 밀어내며 파이는 몸을 빼냈습니다. 저를 꼭 안은 채로요.


“저기예요! 도망칠 것 같아요!” 저는 찰스 스니피가 실린 침대를 밀어 테이블이란 테이블은 다 엎으며 카페를 가로지르는 접속불가자 테러리스트 일행을 가리켰습니다. 손님들이 뇌신경 메시지로 온갖 항의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사아악한 자여! 그대들 나의 저어엉의에서 도망칠 날 없으리이이!” 파이는 접속불가자들을 향해 쓸데없이 소리를 쳐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고 말았습니다.


일행의 뒤쪽에 있는, 찰스와 무어라고 실랑이하고 있던 아가씨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빌어먹을!” 욕지기를 내뱉은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습니다.


파이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고 그녀는 우리 쪽으로 그것을 집어던졌습니다. 손목시계였어요!

“십억 년 뒤에 보자고!” 그녀는 발랄하게 외쳤습니다. 손목시계가 막 파이의 몸에 부딪히려는 찰나였습니다.

파이는 재빨리 몸을 뒤로 꺾어 시계를 피했습니다. 무의식 어디에선가 그 시계가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지 알았던 것일지도 모르죠. 갑자기 그렇게 몸을 뒤로 젖히려면 척추에 상당한 타격이 갔을 겁니다.

시계가 우리의 코앞을 슬로우모션으로 스쳐지나갈 때, 999’999’999라는 숫자가 시계의 모니터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손목시계는 뒤쪽에서 라떼를 마시다가 어리둥절하게 우리를 보고 있던 어떤 대머리 사내의 몸에 부딪혔습니다. 시계가 비프음을 낸 뒤 남자는 사라졌습니다.


“G-엔장! 잘못 던졌어!” 여자는 다시 욕설을 주워섬기며 다른 손목시계를 꺼냈습니다.


파이는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척추를 제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요거 아침에 아프겠구마.” 그는 뜬금없이 오스트리아 억양으로 말하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시계 조심!”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두 번째 시간도약 시계가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파이는 옆으로 점프했습니다. 시계는 (어쩌다 이 사단이 났는지 살피러 왔을) DEX 웨이트리스에게 명중했습니다. 웨이트리스는 사라졌습니다. 음. 적어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어쩌면 10억 년 뒤의 미래에서 두 사람이 새로운 문명을 세울지도 모르죠, 같은 망상을 저는 떠올렸습니다.


“작작 좀 피하라고!” 접속불가자 아가씨가 우리를 노려보며 세 번째 시계를 꺼냈습니다.


“닷지볼 완전 좋아! 건강에도 좋은 스포츠 중의 스포츠지!” 파이는 그녀에게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시계를 던졌고 파이는 피했습니다. 이번에 시계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날아가 테이블에 튕겼고 삐 하는 소리를 낸 뒤, “G-커피의 G는 GREAT의 G입니다. G-라떼 한 잔 하세요!”라고 쓰인 테이블을 미래의 아담과 이브(제가 머릿속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의 친구로 보내 주었습니다.


파이가 접속불가자 아가씨에게 거의 근접했을 때, 그녀는 시간도약시계를 묶은 석류를 꺼냈습니다.

“당장 거기 멈춰, DEX.” 그녀는 으르렁거렸습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왔다간 이 카페에 있는 사람을 전부 재로 만들어 버리겠어.”

찰스 스니피는 아가씨의 연극 같은 행동에 눈을 굴리며 당황했습니다. 상해가는 과일에 신선도 센서를 꽂아 시간도약시계와 연결한다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함축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파이는 그녀의 말을 믿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습니다. “제발. 하지 마. 그 과일... 석류는 너무 익으면 안 좋단 말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엄청 소화불량이 될 거야.” 그는 석류 폭탄이 발동할까 두려워하며 뒷걸음질쳤습니다.


소녀는 위협적인 몸짓으로 석류를 우리 쪽으로 흔들며 다른 두 접속불가자 일행과 침대에 묶인 찰스 스니피와 함께 커피숍을 떠났습니다.


파이는 창문으로 달려가 옆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창유리가 깨지며 우리의 통장 잔고가 0으로 수렴했습니다.

파이는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대비하듯 깨진 유리조각 한가운데 몸을 만 채 웅크려 있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카페는 폭발하지 않았어요.


Dex 경관들이 우리를 둘러쌌습니다. 총 20체였죠. 잠시간의 주먹질과 발차기 후, 고장난 팔다리를 떨며 바닥에 널브러진 DEX 경관들 가운데 파이는 약간 더 후줄근해진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파이가 저를 허공으로 집어던지고 저는 주변을 스캔했습니다.

“동쪽으로 가고 있어요!”

파이는 기품있게도 인도(人道)를 따라 허청거리며 걸었습니다. 왜 DEX 경관들이 우리만 따라왔는지, 왜 그들이 찰스나 접속불가자 납치범들에 대해서는 인지도 하지 못한 듯이 보이는지 의문이었어요.


. . .


우리는 기차역에서 그들을 따라잡았습니다.


“그만 좀 찔러댈 수 없어요?” 찰스가 항의했습니다.


“리더를 계속 짜증나게 만드는 게 제 임무거든요. 당신의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있는 상태라면 스캐너는 우릴 감지할 수 없어요.”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요! 당신들 다 미쳤어!” 찰스는 결박된 몸을 틀어댔습니다.


여자는 웃었습니다. “좋아요. 계속 그러세요. 많이 짜증낼수록 좋아요.”


“악당들! 너희들을 덮쳐 버리겠다!” 파이는 다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아 또 한 번 쓸데없이 우리들의 위치를 드러냈습니다.


이편을 쳐다본 아가씨는 우리의 중간에 놓여 있던 자판기에 시간도약시계를 쑤셔넣고 무언가를 주문했습니다. 파이는 그녀를 향해 비척비척 다가갔습니다. 접속불가자 아가씨와 일행은 일제히 공중부양 침대에 올라탔습니다.


“뭣들 하는 짓이에요? 비키라고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에게 깔린 스니피가 비명을 질렸습니다. 심지어 여자 쪽은 그의 얼굴을 깔아뭉개다시피 했고요. 스니피의 짜증은 끝으로 치달아 있었습니다.


그 침대 주변으로 지나가려 하던 수많은 유저들이 갑자기 혼란스러워하며 멈춰섰습니다. ANNIE가 방향 정보를 보내 주던 전파가 차단된 것 같았습니다.


자판기에서 삐삐 소리가 나더니 뜬금없게도 조약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파이는 부양 침대로 다가가려 했지만 바닥에 널린 조약돌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곧 다른 사람들도 기차역 곳곳에 우왕좌왕 널브러졌습니다. 찰스의 위에 타앉은 접속불가자들은 깔깔거리며 자기부상열차의 플랫폼으로 미끄러져갔습니다.


파이는 조약돌의 홍수 사이를 기어가다가 급기야는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문이 닫힙니다. 출입문에서 물러나 주세요.” 자기부상열차가 말했습니다. 한 발 늦게 플랫폼에 도착한 파이 앞에서 문이 미끄러져 닫혔습니다.

몸을 던진 파이는 문틈에 끼었습니다. 친절한 기차는 다시 자동문을 열려 했지만 한 접속불가자가 크로우바를 들어 문의 조종 패널을 박살냈습니다.

무거운 철제 문이 닫힌 채 틈을 점점 좁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파이의 척추 어딘가가 부러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의 팔다리가 어느 순간 작동을 멈춘 것을 보면요.

접속불가자는 파이의 위태위태한 꼬락서니를 비웃으며 시공도약시계 석류를 그의 입에 넣겠다는 협박을 늘어놓았습니다. 파이는 두려워하며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열차가 출발하자 파이의 다리는 열차 밖으로 늘어진 채 규칙적인 박자로 바깥의 기둥에 부딪혔습니다.


다음 역에서, 접속불가자 소녀가 탄소나노섬유 테이프를 하나 샀습니다. 그녀와 그 일행들은 파이와 저를 테이프로 꽁꽁 묶어 번데기로 만들고 우리를 계단 아래쪽으로 굴린 뒤 떠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엄청 배고픈 애벌레다아!”  파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외쳤습니다. 행인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겁에 질려 달아났습니다.


“제가 나비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여! 누구 날카로운 칼 없슴까?” 파이는 계속 소리쳤습니다. 그럭저럭 논리적인 이야기였지만, 얼굴도 없고 팔다리는 묶여 애벌레 같은 꼴이 된 상태로는 행인 유저들을 겁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60체의 DEX 경관이 경계하며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난 그냥 지나가던 엄청 배고픈 애벌레라니까여.” 파이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지만요.


Credits

Art Director:

Vitaly S Alexius

Illustrator:

Andrey Fetisov

Street cred to sol4rplexus for journal brainstorming.




역주. "시계 조심!" = "Watch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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